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죽음을 그린 회화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죽음은 로마 천 년 역사에서 가장 극적인 전환점 중 하나로 꼽힌다. 원로원 의원 대다수의 깊은 반감을 사게 된 독재관 카이사르는 기원전 44년 3월 15일, 이른바 '이데스 오브 마치(3월 15일)'에 무려 40여 곳의 상처를 입히는 칼에 찔려 생명을 잃었다.
음모자들 가운데에는 그가 사랑했던 양자(혹은 친자)로 알려진 브루투스도 끼어 있었다는 사실은 누구나 잘 아는 유명한 일화다.
죽음을 예고한 불길한 징조들
고대 로마인들은 어느 사건에서든 숨겨진 징조를 읽어내려 하는 매우 미신적인 민족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최후는 여러 섬뜩한 징조에 의해 예언된 듯한 양상을 띠었다.
단순한 우연의 일치일 수도 있지만, 살해 사건을 앞둔 며칠간 기이한 일들이 연달아 벌어졌다. 재앙을 점치는 예언과 예지몽이 사건 전야를 짓눌렀고, 요컨대 카이사르의 종말이 다가오고 있음이 공기 중에 감돌고 있었다.
점성술사 스푸린나의 경고
정치가의 마음을 가장 먼저 흔든 이는 점성술사 스푸린나였다. 그녀는 위험이 코앞에 닥쳤다고 직감하고 그에게 경고를 전했다.
“3월 15일을 조심하라!”
셰익스피어의 희곡 『줄리어스 시저』에도 등장해 널리 알려진 이 경고 문구는, 훗날 카이사르가 원로원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스푸린나를 다시 만났을 때 “이데스 오브 마치는 이미 왔다”라고 말하고, 그녀가 “그래도 아직 가지 않았다”고 받아친 유명한 일화로도 이어진다.
아내 칼푸르니아의 예지몽
두 번째 경고는 아내 칼푸르니아로부터 왔다. 그녀는 꿈속에서 남편이 자택의 지붕이 무너지면서 목숨을 잃는 참혹한 장면을 목격했다. 고대의 기록에 따르면 칼푸르니아는 이 밤 내내 악몽에 시달렸고, 남편이 원로원에 나가는 것을 필사적으로 만류했다고 전해진다.
카이사르 자신이 꾼 몽환
마지막으로 독재관 본인의 잠자리마저 뒤흔든 환영이 나타났다. 하늘을 날아올라 최고신 유피테르와 손을 잡는 기이한 꿈이었다. 당시 사람들은 이를 곧 죽음, 즉 신들의 세계로 올라간다는 징조로 해석할 수 있었던 것이다.
용기는 운명을 바꾸지 못했다
그러나 평생 용기를 잃지 않았던 율리우스 카이사르를 멈추기에는 이런 징조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칼푸르니아가 눈물로 원로원 행차를 만류하자, 그는 그녀를 안심시키며 이런 저런 미신은 믿지 말라고 다독였다.
그리고 그것이 두 사람이 나눈 마지막 대화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