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림 속에는 샤를마뉴가 가장 유명한 아내 중 한 명인 에르멘가르다와 함께 있는 모습이 담겨 있다. 이 군주는 평생 뉘우치지 않을 만큼 여자를 밝힌 인물이었다.
탁월한 정치가, 요란했던 사생활
프랑크 왕국의 국왕이자 탁월한 정치가였던 샤를마뉴는 공적인 업적만큼이나 요란한 사생활로도 유명했다. 당대 기록들은 그가 끝내 뉘우치지 않은 '여자 밝히기'였다고 증언한다.
실제로 그에게는 히밀트루데, 데시데라타, 이탈리아 문호 만초니의 비극 『아델키』에서도 이름을 남긴 다정한 에르멘가르다, 파스트라다, 리우트가르다까지 모두 다섯 명의 아내가 있었다. 여기에 셀 수 없이 많은 첩들까지 더해지니, 이 군주가 얼마나 뜨거운 사람이었는지 짐작하기에 충분하다.
여자 없이는 하루도 보낼 수 없던 황제
요컨대 샤를마뉴는 여자 없이는 지낼 수 없는 인물이었다. 아내가 임신 중일 때는 물론이고, 마지막 아내 리우트가르다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그는 무수한 연인들을 거느렸다.
혼외 관계에서 태어난 자녀들
그렇기에 이러한 혼외 관계에서 수많은 자녀가 태어난 것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적어도 스무 명은 된다고 전해진다. 그중 일부는 아버지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는데, 샤를마뉴는 그들의 죽음을 진심으로 애도했다고 한다.
딸들에 대한 과도한 집착
당대 연대기에는 샤를마뉴가 딸들과 지나치게 가까운 관계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어, 나아가 근친상간설까지 제기되곤 한다. 물론 이는 단순한 험담에 불과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 하나가 있다. 샤를마뉴는 딸들이 평생 시집가지 않고 자신 곁에 머물러 줄 것을 요구했다는 점이다. 딸들이 자신에게서 멀어지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던 그는, 길거나 짧은 딸들의 연애는 묵인하면서도 결혼만은 끝내 허락하지 않음으로써 늘 곁에 두고자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