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성 베드로의 얼굴 복원 모습
어부에서 첫 번째 사도로
예수 그리스도의 첫 번째 사도였고, 훗날 교회 역사상 가장 중요하고 사랑받는 성인 중 한 사람이 된 어부 베드로. 우리는 그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을까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스승을 따라나서 새로운 시대의 막을 연 이 남자는 과연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사실 그에 대한 전기적 정보는 그리 많지 않지만, 확실하게 알려진 사실들도 분명히 존재합니다.
갈릴리 호숫가의 어부, 시몬
베드로는 기독교 시대가 열리던 무렵, 갈릴리 호(티베리아스 호) 근처의 작은 마을 베싸이다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본래 이름은 시몬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성격이 '돌처럼 거칠다'는 점을 간파하시고 새 이름을 지어주셨는데, 이것이 바로 '페트로스(반석)', 즉 베드로라는 이름의 유래입니다.
복음서에 따르면 그는 생계를 위해 어부로 일하며 소박한 삶을 살았고, 아내와 장모, 자녀들과 함께 지냈습니다. 예수를 따르는 것이 자신의 사명임을 깨달은 뒤에는 그 길을 걸었으며, 예수와는 깊은 우정과 다함없는 존경심으로 맺어져 있었습니다. 다만 곱지 않은 성격 탓에 종종 논쟁적이고 투덜대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고 전해집니다.
예루살렘을 떠나 로마로
예수님의 십자가형과 죽음 이후, 베드로는 세례를 베풀고 수많은 사람들의 회심을 인도하며 진정한 종교적 여정을 시작했습니다. 이 활동으로 인해 그는 여러 차례 체포되었고, 결국 예루살렘을 영영 떠나기로 결심합니다.
서기 42년, 베드로는 로마에 도착하여 죽음이 닥칠 때까지 그곳에 머물렀습니다. 그의 최후는 황제 네로가 명령한 기독교 박해 속에서 찾아왔습니다. 네로는 서기 64년 도시의 절반을 잿더미로 만든 대화재의 책임을 기독교인들에게 뻔뻔하게 전가했던 인물입니다.
사료에 따르면 베드로는 자신의 뜻에 따라 머리가 아래를 향한 채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주님과 같은 방식으로 죽을 만큼 자신은 가치 없는 몸이라고 선언했기 때문입니다.
발굴된 집, 그리고 추정에 머무는 무덤
고고학자들의 연구와 발굴 덕분에 성 베드로가 실제로 살았던 집이 발견될 수 있었습니다. 반면 그의 무덤에 관해서는 아직 확실하지 않은 부분이 남아 있습니다.
교황 비오 12세가 1939년 발굴 조사를 허가하면서 바티칸 궁전 지하의 미로 같은 공간에서 발견된 무덤은, 수많은 정황상 성인이자 순교자의 석관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나 확실하고 논박할 수 없는 증거가 부족한 상황에서, 이 무덤은 현재로서는 '추정' 단계에 머물러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