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바스티유 습격 당일, 폭도들이 찾지 못한 여덟 번째 죄수 드 사드 후작

바스티유 습격 당일, 폭도들이 찾지 못한 여덟 번째 죄수 드 사드 후작

스무 살 무렵의 드 사드 후작으로 추정되는 초상화

프랑스 혁명의 도화선, 바스티유 습격

1789년 7월 14일 파리에서 일어난 바스티유 습격은 프랑스 혁명이 공식적으로 시작되었다고 평가받는 결정적인 사건입니다. 굶주린 파리 시민들은 왕권의 상징이자 정치적 억압의 공포를 상징하던 이 오래된 요새를 무너뜨리며 새로운 시대의 막을 열었습니다.

시민들이 발견한 것은 단 일곱 명의 죄수

오랫동안 감옥으로 사용되어 온 바스티유에 시위대가 죄수들을 석방하기 위해 뛰어들었을 때,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거창한 비밀이 아니라 단 일곱 명의 죄수뿐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이 사실에 놀랐지만, 더욱 흥미로운 것은 그 자리에 없던 한 사람의 존재였습니다.

바로 당대 가장 유명하고 가장 많은 화제를 몰고 다니던 인물, 드 사드 후작(Marquis de Sade)입니다. 만약 그가 그날 그곳에 있었다면, 여덟 번째 죄수로서 역사의 한복판에 서게 되었을 것입니다.

운명같은 열흘의 차이

드 사드 후작은 '방종(libertinage)' 혐의로 징역형을 선고받아 바스티유에 수감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바스티유 습격 약 열흘 전인 같은 달 초에 이미 다른 시설로 이감된 상태였습니다. 덕분에 그는 격동의 그날을 감옥 밖에서 지나치게 되었고, 폭도들의 손에 풀려나는 극적인 장면 대신 역사의 관찰자로 남게 되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후작이 이감된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수감 생활 동안 그는 창문을 통해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죄수들이 학살되고 있다"고 외쳤다고 알려져 있는데, 이 소란이 당국의 신경을 크게 건드렸고 결국 그를 다른 곳으로 옮기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그의 과격한 말들이 오히려 자신을 위험한 날로부터 구해준 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