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바리스트 갈루아(Evariste Galois)의 초상
솔직히 고백하자면, 수학은 결코 제 열정 분야가 아닙니다. 그래서 수학이라는 학문 자체나 그 역사를 빛낸 위대한 학자들에게도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오래된 잡지 스토리카(Storica)(2014년 11월호, 69호)를 넘기다가 전혀 알지 못했던 인물, 에바리스트 갈루아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 젊은 수학자는 잔혹하고도 비극적인 운명에 휩쓸렸습니다. 그리고 그 운명은 끝내 실현되기 전까지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것이었습니다.
결투라는 시대의 비극
천재적이고 조숙했던 이 소년은 과거 수 세기 동안 유럽을 휩쓸었던 슬픈 '유행'인 결투(dueI)를 다룬 기사 속에서 소개되었습니다. 그 역시 이 유행의 희생자였기 때문입니다.
호기심에 이끌려 갈루아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기 시작했고, 문화·과학·인간적인 측면 모두에서 정말 흥미로운 인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스무 살의 천재, 갈루아 이론
에바리스트 갈루아는 1811년 프랑스에서 태어났으며, 어린 시절부터 남다른 통찰력과 지능으로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특히 학업에서 빼어난 재능을 보여, 불과 19세에 추상대수학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이론 중 하나를 발표했습니다. 바로 그의 이름을 딴 갈루아 이론(Galois Theory)입니다.
눈부신 미래가 펼쳐져 있었고, 이미 당대 사람들에게 수학계의 큰 유망주로 주목받던 갈루아의 꿈은 당시에는 결코 드문 일이 아니었던 한 사건 앞에서 산산조각 났습니다.
1832년 5월 31일, 운명의 아침
사랑에 빠진 여성의 명예를 지키겠다는 명분으로, 1832년 5월 31일, 스물한 살의 청년은 결투에 나섰고, 입은 부상으로 다음 날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것이 최소한 공식적으로 알려진 사건의 경위와 이유입니다. 하지만 이 사건이 단순한 결투가 아니라 정치적 암살이었다는 주장도 있었습니다. 왕의 비밀경찰을 배후로 지목하는 목소리였습니다.
미스터리로 남은 무덤
오늘날까지도 에바리스트 갈루아의 요절은 여러 면에서 미스터리로 남아 있습니다. 그의 묘소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부르라렌(Bourg-la-Reine) 묘지에는 그를 기리는 기념비(공동묘비)가 세워져 있지만, 젊은 천재의 유해가 실제로 어디에 안치되어 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그의 몸은 현재까지도 위치를 알 수 없는 합장묘(공동 무덤)에 묻힌 것으로 추정됩니다.
갈루아는 죽기 전날 밤, 자신의 수학적 유산을 급히 편지에 적어 친구에게 보냈다고 전해집니다. 그 편지 속 이론들은 후대 수학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남겼습니다. 스물한 해의 짧은 생애였지만, 그가 남긴 빛은 지금도 수학의 하늘에서 꺾이지 않고 빛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