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마르고트 프랑크는 왜 강제 수용소로 가라는 소집 통지서를 받았을까?

1942년 7월 5일, 암스테르담에 살던 16세 소녀 마르고트 프랑크에게 한 통의 서신이 배달되었습니다. '유대인 중앙 이주 사무소(Zentralstelle für jüdische Auswanderung)' 명의의 그 통지서는 강제 노동 수용소로 이송될 것을 명하는 소집 영장이었고, 이 한 장의 종이가 프랑크 가족 전체의 운명을 바꿔놓게 됩니다.

왜 마르고트에게 소집 통지가 도착했나

당시 네덜란드는 나치 독일의 점령 아래 있었고, 점령 당국은 유대인들을 단계적으로 사회에서 배제한 뒤 강제 이주 정책을 본격화하고 있었습니다. 1942년 여름이 되자 점령당국은 특히 젊은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노동 동원(Arbeitseinsatz)'이라는 명목의 소집 통지서를 대량 발송하기 시작했습니다. 만 16세였던 마르고트는 바로 이 대상에 해당했던 것입니다.

통지서는 마르고트에게 지정된 날짜에 신고하여 네덜란드의 트랜싯(수송) 수용소인 베스터보르크(Westerbork)를 거쳐 독일 내 강제 노동 캠프로 보내질 것을 요구했습니다. 겉으로는 '노동 배치'라는 이름을 달았지만, 실상은 유대인 대학살로 이어지는 대규모 추방 체계의 일부였습니다.

통지서가 촉발한 결단, 비밀 은신처로

프랑크 가족은 원래 7월 16일경으로 잡아두었던 은신 계획을 앞당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딸이 끌려가는 것을 그저 지켜볼 수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다음 날인 7월 6일 아침, 가족들은 오토 프랑크의 회사 건물 뒤편에 마련된 비밀 은신처로 자취를 감췄습니다. 미프 기스, 빅토르 클러러 등 신뢰할 수 있는 직원들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한 도피였습니다.

당시 만 13세였던 동생 안네는 이 순간을 자신의 일기에 생생하게 기록했습니다. 소집 통지서가 아버지가 아닌 언니에게 온 것임이 밝혀졌을 때 가족이 느낀 충격과 공포의 순간들이 바로 그것입니다.

흔한 오해 바로잡기

소집 통지를 받은 사람이 누구인지 혼동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안네 프랑크의 일기와 암스테르담 안네 프랑크 하우스의 공식 기록에 따르면, 소집 통지서를 받은 사람은 분명 마르고트였습니다. 안네는 소집 연령에 해당하지 않았으며, 통지서를 받은 언니와 가족의 위기를 목격하고 이를 기록한 사람이었습니다.

그 후의 이야기

프랑크 가족은 비밀 은신처에서 약 2년을 버텼지만, 1944년 8월 4일 밀고로 인해 발각되어 모두 체포되었습니다. 마르고트는 베스터보르크를 거쳐 아우シュ비츠로 이송되었고, 이듬해인 1945년 2~3월경 베르겐벨젠 수용소에서 발진티푸스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동생 안네 역시 며칠 차이로 같은 병으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한 통의 소집 통지서로 시작된 비극은, 오늘날까지 전 세계에 홀로코스트의 참혹함을 증언하는 기록으로 남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