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1972년 1월 30일 '피의 일요일'에 민권 행진이 있었던 이유는? 두 사건의 혼동 바로잡기

질문의 배경: 서로 다른 두 개의 '피의 일요일'

'피의 일요일(Bloody Sunday)'이라는 이름은 역사상 두 번 사용된 것으로 유명합니다. 하나는 1972년 1월 30일 북아일랜드 데리에서 벌어진 비극이고, 다른 하나는 1965년 3월 7일 미국 앨라배마주 셀마의 민권 행진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흔히 떠올리는 미국의 민권 행진은 1972년 피의 일요일 당일에 열린 것이 아니라 1965년 3월 7일에 있었습니다. 다만 1972년 1월 30일에도 실제로 민권 행진이 열렸고, 그 행진 역시 처참한 결과로 끝났다는 점을 함께 짚어둘 필요가 있습니다.

1972년 1월 30일, 북아일랜드 데리의 피의 일요일

1972년 1월 30일 북아일랜드 데리(런던데리)에서는 가톨릭계 주민들을 무차별 구금하던 '구금법' 철폐를 요구하는 비폭력 민권 시위 행진이 열렸습니다. 그러나 영국군 낙하산 연대가 무장하지 않은 시위 군중에게 발포하면서 13명이 현장에서 목숨을 잃었고, 한 명은 몇 달 뒤 부상으로 사망해 총 14명의 희생자가 발생했습니다. 이날은 '피의 일요일'로 불리며 북아일랜드 분쟁, 이른바 '더 트러블즈(The Troubles)'의 상징적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미국 민권 운동의 '피의 일요일'은 1965년 3월 7일

반면 미국에서 '피의 일요일' 하면 떠올리는 민권 행진은 1965년 3월 7일 셀마에서 몽고메리로 향하는 투표권 행진입니다. 존 루이스와 호세아 윌리엄스가 이끄는 600여 명의 행진대가 에드먼드 페터스 다리에서 주경찰과 집행관들의 최루탄과 곤봉 공격을 받아 저지당했습니다. 이 폭력 장면이 전국에 생중계되면서 여론이 크게 뒤집혔고, 같은 해 미국 투표권법(Voting Rights Act) 통과의 결정적 계기가 되었습니다.

맬컴 X의 암살

같은 해 초 미국 민권 진영을 뒤흔든 또 다른 사건은 맬컴 X의 암살입니다. 1965년 2월 21일, 맬컴 X는 뉴욕 워싱턴 하이츠의 오듀번 볼룸에서 자신이 창설한 아프로계 미국인 단결 기구(OAAU) 집회에서 군중을 향해 연설을 시작하려던 순간, 네이션 오브 이슬람(NOI) 소속 세 남성이 근거리에서 리볼버를 난사해 그를 살해했습니다.

암살 소식에 전국으로 번진 분노

맬컴 X 암살 소식이 퍼지자 분노한 시민들이 미국 전역 주요 도시의 거리로 쏟아져 나왔습니다. 로스앤젤레스, 샌프란시스코, 뉴욕, 디트로이트, 필라델피아, 클리블랜드, 보스턴, 할렘, 뉴저지주 뉴어크와 저지시티, 워싱턴 D.C., 애틀랜타, 볼티모어, 신시내티, 인디애나폴리스, 오하이오주 데이턴,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 피츠버그, 플로리다주 탬파와 마이애미, 시카고, 캔자스시티, 루이빌, 시애틀 등 곳곳에서 격앙된 군중들이 거리 시위를 벌였습니다.

핵심 정리

· 1972년 1월 30일 '피의 일요일': 북아일랜드 데리의 반(反)구금법 민권 행진 중 영국군 발포로 14명 사망
· 미국 민권 운동의 '피의 일요일': 1965년 3월 7일 셀마 투표권 행진, 경찰의 폭력 저지
· 맬컴 X: 1965년 2월 21일 뉴욕 오듀번 볼룸에서 NOI 소속 3인의 총격으로 암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