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로게다 포위전에서 여성과 어린이도 희생되었나?
네, 실제로 그렇습니다. 1649년 아일랜드 드로게다(Drogheda) 포위전에서는 여성과 어린이를 포함한 수많은 주민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 사건은 잉글랜드 의회파 군대의 지휘관 올리버 크롬웰(Oliver Cromwell)이 도시 함령 후 학살을 명령하면서 벌어진 것으로, 크롬웰의 아일랜드 정복 전쟁에서 가장 악명 높은 참사 중 하나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올리버 크롬웰과 학살 명령
크롬웰은 1649년 왕당파가 지배하던 드로게다 성벽을 공격해 함락시킨 뒤, 항복하지 않고 저항한 수비군과 함께 도시 내부에 있던 사람들까지 대거 살해할 것을 지시했습니다. 당시 관습법상 요새가 강공으로 함락되면 항복 거부에 대한 응징이 허용된다는 논리를 근거로 삼았지만, 결과적으로 무장하지 않은 민간인들까지 희생되면서 오늘날까지도 전쟁 범죄로 비판받고 있습니다.
사망자 수는 얼마나 될까?
정확한 사망자 수는 기록 부족으로 알기 어렵지만, 역사학자들의 추정치는 대체로 2,000명에서 3,500명 사이입니다. 이 숫자에는 왕당파 병사뿐 아니라 여성, 어린이 등 일반 시민도 포함됩니다. 특히 성 안의 교회와 탑에 피신했던 사람들까지 공격받았다는 기록이 남아 있어, 당시 학살의 규모와 잔혹성을 짐작하게 합니다.
역사적 의미와 평가
드로게다 학살은 크롬웰의 아일랜드 원정 전체에 그늘을 드리운 사건으로, 아일랜드에서는 영국과의 역사적 갈등을 상징하는 사례로 자주 언급됩니다. 반면 일부 연구자들은 당시 유럽 전쟁 관행 속에서 해석해야 한다며 상대화하기도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간인 다수가 희생된 사실 자체는 부정할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