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1808년, 노예선 '호프' 호 선창에서 쓴 한 사람의 일기

1808년

노예선 '호프(Hope)' 호에서


사랑하는 일기장에게,


나는 지금 이 어둠 속에 앉아 있다. 사슬에 묶여 갇힌 채, 몸은 온통 쑤시고 마음은 절망으로 가득 차 있다. 땀과 구토물, 그리고 공포의 악취가 공기를 짙게 메워 내 감각마저 질식시킨다. 내 주위에서는 동료 포로들의 신음과 울음소리가 끊임없이 메아리치며, 우리가 처한 비참한 현실을 잊지 못하게 한다.


우리는 이 떠다니는 감옥 안에서 화물처럼 짐싸여 있다. 이름도, 존엄도, 인간성도 모두 빼앗긴 채. 잔인한 눈빛과 냉혹한 마음을 지닌 그들은 우리를 단순한 동산, 사고팔 수 있는 상품으로만 여긴다. 그들은 우리를 고향에서, 가족에게서, 우리의 삶에서 뜯어내어, 낯설고 적대적인 땅에서 종살이를 살게 될 미지의 운명 앞에 내몰았다.


항해는 끝이 없어 보인다. 하루하루가 고통의 영원으로 이어진다. 우리에게 주어지는 식량은 겨우 숨을 붙일 만큼의 양일 뿐, 꼬르륵거리는 허기를 달래주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마시는 물은 흐리고 오염되어 병균까지 옮기곤 했고, 그 때문에 몸은 점점 쇠약해지고 정신은 더욱 가라앉는다.


배 안의 환경은 상상을 초월한다. 우리는 좁은 선창 안에 빈틈없이 짓눌려 갇혀 움직일 공간도, 숨 쉴 틈도 거의 없다. 공기는 인간의 배설물 냄새로 짙게 가득 차 있고, 배가 끊임없이 요동칠 때마다 편안함이나 휴식 따위는 찾아볼 수 없다. 병은 우리 사이에 급속히 번졌고, 병에 굴복한 이들은 그저 바다에 던져졌다. 자비 없는 파도가 그들의 시신을 삼켰다.


밤이 되면 달이 바다 위로 창백한 빛을 드리울 때, 나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다시 고향을 볼 수 있을지 생각한다. 절망 속에 두고 온 가족들이 그립다. 그들의 품이 그리워진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사랑하는 아프리카로 돌아갈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는 것을.


나는 깊은 불의감에 사로잡힌다. 나는 이런 운명을 받을 만한 잘못을 저지른 적이 없다. 나 역시 생각하고 느끼고 꿈꾸는 인간이다. 우리를 노예로 삼는 저들과 다름없이 말이다. 그러나 이 비인간적인 심연 속에서 나는 단순한 물건으로 전락했다. 거래되고 착취당하는 상품으로.


그럼에도 이 모든 어둠 속에서, 희망의 불씨 하나가 아직 내 안에서 타오르고 있다. 나는 포기하지 않겠다. 이 억압자들이 내 정신을 꺾도록 내버려두지 않겠다. 나는 살아남을 방법을 찾을 것이고, 버텨낼 것이며, 언젠가 반드시 내 자유를 되찾을 것이다.


그날까지 나는 이 글들을 써 내려갈 것이다. 우리 모두의 고통과 강인함을 증언하기 위해 영혼을 이 종이 위에 쏟아내면서. 이 글들이 우리에게 자행된 만행의 증거가 되고, 인간의 마음이 지닌 불굴의 정신을 후세에 일깨워주는 기억이 되기를.


깊은 고통 속에서,

대서양 횡단 노예 무역의 한 노예로부터


역사적 배경

1808년은 대서양 노예 무역의 역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된 해였습니다. 영국은 1807년 노예무역폐지법(Slave Trade Act)을 통과시켰고, 미국 역시 헌법이 허용한 최초 시점인 1808년 1월 1일부로 노예 수입을 금지했습니다. 그러나 법의 제정에도 불구하고 불법 노예 무역은 수십 년간 계속되었으며, 수백만 명의 아프리카인들이 강제로 바다에 내던져지는 비극은 오랫동안 이어졌습니다. 이 일기는 실존 인물의 기록이라기보다 당시 노예선 선창에서 겪었던 고통을 재현한 창작 글이지만, 올라우다 에키아노(Olaudah Equiano)의 회고록 등 실제 노예 무역 생존자들이 남긴 증언들과 맞닿아 있는, 그 시대의 참상을 생생하게 전해주는 기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