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유한 가문에서 태어난 마리
마리는 1665년 부유한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서머셋 공작 에드워드 시모어(Edward Seymour, 4th Duke of Somerset)였고, 어머니는 도싯 백작부인 메리 캐펠(Mary Capell)이었습니다. 네 자녀 중 장녀로 태어난 마리에게는 두 명의 남동생과 한 명의 여동생이 있었습니다.
마리는 집에서 체계적인 교육을 받으며 고전, 수학, 문학 등 폭넓은 학문을 두루 익혔습니다. 나아가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스페인어까지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도록 길러졌습니다.
일찍 찾아온 비극
마리의 어린 시절은 비극으로 점철되어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그녀가 겨우 네 살 때 세상을 떠났고, 아버지마저 열한 살 때 별세했습니다. 이후 마리는 엄격한 칼뱅주의 신앙을 지닌 할머니 손에서 자라게 됩니다. 할머니는 마리에게 깊은 종교적 신앙심을 심어주었을 뿐만 아니라, 독립적이고 자립적인 성품을 갖추도록 가르쳤습니다.
재능과 매력을 지닌 여성으로 성장하다
어린 시절의 고난에도 불구하고 마리는 강인하고 총명한 여성으로 성장했습니다. 그녀는 재치와 매력, 아름다움으로 널리 알려졌으며, 음악과 미술 분야에서도 뛰어난 재능을 보였습니다. 수많은 구혼자가 마리에게 다가왔지만, 그녀는 결국 1677년 오렌지 공 윌리엄 3세와 결혼했습니다.
명예혁명과 잉글랜드의 여왕
윌리엄 3세는 개신교 신자로, 가톨릭 국왕 제임스 2세를 축출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품고 있었습니다. 마리의 지원 속에 윌리엄은 1688년 잉글랜드를 침공하여 제임스 2세를 성공적으로 몰아냈습니다. 이후 두 사람은 잉글랜드의 국왕과 여왕으로 함께 즉위했습니다.
국민에게 사랑받은 여왕
마리는 인기 있는 여왕으로서 신민들의 깊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녀는 친절함과 자비심, 관대함으로 유명했으며, 예술의 후원자로서 활약하는 한편 잉글랜드 은행 설립에도 기여했습니다.
짧지만 빛나던 생애의 끝
마리는 1694년, 스물아홉 살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남편 윌리엄 3세가 그녀의 뒤를 이어 통치를 이어갔으며, 마리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안장되었습니다. 오늘날에도 그녀의 무덤을 그곳에서 만나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