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은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한 전쟁'으로 불렸지만, 정작 그 전쟁에 참여한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은 군대 안에서나 후방 사회에서나 광범위한 인종 차별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군대 내에서의 차별
인종 분리 정책
아프리카계 미국인 병사들은 육·해·공군 등 모든 군 부문에서 백인 병사들과 분리되어 복무해야 했습니다. 대부분 전투 부대 배치가 거부되고 취사, 청소, 운전과 같은 지원 업무에만 동원되었습니다. 다만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터스키기 에어맨(Tuskegee Airmen)으로 알려진 흑인 비행 부대는 유럽 전선에서 뛰어난 전과를 세우며 흑인의 능력을 입증했습니다.
진급 기회의 제한
흑인 병사들은 동일한 자격과 경력을 갖추고도 진급에서 배제되는 경우가 많았고, 장교로 임관할 기회도 백인 병사에 비해 현저히 적었습니다.
임금 차별
같은 일을 수행하면서도 흑인 병사들은 백인 병사보다 낮은 급여를 받았습니다. 이는 명백한 제도적 차별이었습니다.
언어적·신체적 학대
흑인 병사들은 백인 병사와 장교들로부터 모욕적인 언행과 신체적 폭력에 자주 노출되었습니다. 심지어 전쟁 포로를 대하는 태도보다 더 가혹하게 흑인 동료 병사를 대하는 경우도 있었다는 증언이 남아 있습니다.
후방 사회에서의 차별
주거 차별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은 백인 거주 지역의 주택을 구하는 데 거부당했으며, 주로 열악한 환경의 흑인 지역에만 살 수 있었습니다.
취업 차별
방위 산업이 호황을 누리던 시기에도 흑인들은 좋은 직장을 구하기 어려웠고, 같은 일을 해도 백인 노동자보다 낮은 임금을 받았습니다. 이에 흑인 지도자 A. 필립 랜돌프가 주도한 행진 운동의 압박으로 루스벨트 대통령은 1941년 8802호 행정명령을 발표하여 국방 산업 내 인종 차별을 금지하게 됩니다.
교통 차별
버스와 열차 등 공공 교통수단에서 흑인들은 흑인 전용 좌석에 앉도록 강요되었고, 때로는 승차 자체를 거부당하기도 했습니다.
린칭(私刑)의 공포
남부를 중심으로 흑인들은 백인 무리에 의한 린칭의 표적이 되었습니다.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 이러한 집단 살해는 흑인 공동체 전체에 깊은 공포를 심었습니다.
'더블 V' 캠페인과 변화의 시작
이러한 모순 속에서 흑인 신문들이 내건 구호가 바로 '더블 V(Double Victory)'였습니다. 즉, 해외에서는 파시즘에 대한 승리를, 국내에서는 인종 차별에 대한 승리를 동시에 쟁취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전쟁 중 흑인들의 헌신과 희생은 전후 인권 운동의 중요한 토대가 되었습니다. 1948년 트루먼 대통령은 군 내 인종 분리 폐지를 명하는 9981호 행정명령에 서명했고, 드디어 1950~60년대 시민권 운동을 통해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은 차별 철폐를 향한 의미 있는 진전을 이루게 됩니다.
결국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흑인이 겪은 차별은 당시 미국 사회에 만연했던 인종주의의 산물이었으며, '민주주의의 수호'를 외치던 나라 내부의 커다란 모순을 드러내는 사례로 오늘날까지 회자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