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남부연합군(남군) 병사들의 상당수는 미국 남북전쟁이 끝난 뒤 가석방되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다만 그 과정에는 몇 가지 중요한 조건이 따랐습니다.
애퍼매틱스 항복과 가석방 조건
1865년 4월 9일, 버지니아주 애퍼매틱스 코트하우스(Appomattox Court House)에서 로버트 E. 리(Robert E. Lee) 장군이 이끄는 북버지니아군이 율리시스 S. 그랜트(Ulysses S. Grant) 장군의 북군에 항복하면서 전쟁은 사실상 막을 내렸습니다. 이 항복 조건에는 남부연합군 병사들이 미국 연방에 대한 충성 맹세서를 서명하는 것을 조건으로 가석방되어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내용이 명시되어 있었습니다.
그랜트 장군은 패배한 적에게도 최대한 관대한 태도를 취했습니다. 병사들은 말과 개인 소지품을 집까지 가져갈 수 있었고, 귀향길에 필요한 식량도 지급받았습니다. 이러한 화해적인 조치는 전후 남북 간의 재통합에 큰 도움이 된 것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충성 맹세를 거부한 병사들의 처우
반면 충성 맹세를 거부한 병사들은 전쟁 포로로 분류되어 포로수용소로 이송될 수 있었습니다. 즉, 귀향 여부는 각 병사가 연방에 대한 충성을 맹세할 의사가 있는지에 달려 있었던 셈입니다.
대다수의 병사는 고향으로 돌아갔다
4년에 걸친 참혹한 전쟁에 지친 대부분의 남부연합군 병사들은 맹세를 받아들이고 무기를 내려놓은 뒤 고향으로 돌아가 전후 재건의 시기로 들어갔습니다. 이처럼 애퍼매틱스의 관대한 항복 조건은 수십만 명의 병사들이 처형이나 장기 억류 없이 가족들 곁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