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론부터 말하면, 입증도 반박도 불가능한 문제입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공모자들이 그에게 덧씌운 죄목에 대해 실제로 결백했는지를 확인해 줄 객관적인 증거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당시의 기록만으로는 혐의가 사실인지 아닌지를 입증하거나 반박할 수 없기 때문에, 이 질문이 전제하는 '카이사르의 결백'이라는 주장 자체가 역사적으로 입증 불가능한 사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공모자들이 카이사르에게 제기한 혐의
기원전 44년 3월 15일, 브루투스와 카시우스 등 원로원파 인사들은 카이사르를 '폭군'으로 규정하고 암살했습니다. 그들이 내세운 명분은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 왕위를 노리고 로마 공화정을 전제 정치로 바꾸려 한다는 의혹
- '종신 독재관(dictator perpetuo)' 칭호를 받아들이며 권력을 독점했다는 점
- 루페르칼리아 축제에서 안토니우스가 왕관을 바쳤을 때 거부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으나, 일부에서는 이를 정치적 연출로 의심했다는 점
양쪽 모두 확실한 증거는 없다
카이사르가 실제로 왕이 되려 했다는 직접적인 증거도, 그렇지 않았다는 증거도 부족합니다. 수에토니우스와 플루타르코스 같은 고대 사가들의 기록은 상당 부분 후대에 작성되었고, 집필자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서술이 달라질 수 있었습니다. 클레오파트라와의 관계, 화폐에 자신의 초상을 새긴 행위 등 카이사르 생전의 행보 역시 해석에 따라 전혀 다르게 읽힐 수 있습니다.
역사가들의 평가도 엇갈린다
현대 역사학계 역시 카이사르의 진짜 의도에 대해 의견이 분분합니다. 어떤 학자들은 그가 공화정의 틀 안에서 권력을 유지하려 했다고 보는 반면, 다른 학자들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군주제로의 전환을 준비하고 있었다고 해석합니다.
결국 카이사르의 결백 여부는 남겨진 기록의 한계 속에서 단정적으로 판단하기 어려운 문제이며, 확실한 답을 내릴 수 없는 역사적 미제로 남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