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레오파트라가 미라로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종종 접하게 되는데, 사실 이는 잘못된 통념입니다. 클레오파트라는 고대 이집트의 전통에 따라 미라화되었습니다. 그녀가 미라가 되지 않았다는 역사적 증거나 기록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마지막 파라오로서의 장례
클레오파트라 7세는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마지막 통치자로, 명목상으로나마 이집트의 파라오였습니다. 기원전 30년 악티움 해전에서 옥타비아누스(훗날의 아우구스투스 황제)에게 패배한 후 그녀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지만, 당시 로마의 지배층조차 그녀를 이집트의 군주로 인정하고 있었습니다.
역사 기록이 남긴 단서
고대 문헌에 따르면, 옥타비아누스는 클레오파트라가 연인인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곁에 안장되도록 허락했습니다. 이러한 기록은 그녀가 이집트 전통 방식으로 영면에 들었음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단서입니다. 수천 년간 지속된 이집트의 미라 제작 관습은 왕족에게 필수적인 장례 의식이었기에, 클레오파트라 역시 이 전통을 따랐을 것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그럼에도 미라가 발견되지 않는 이유
흥미로운 점은 클레오파트라의 무덤과 미라가 현재까지 발견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학자들은 그녀의 무덤이 알렉산드리아 인근, 특히 탑osi리스 마그나(탑 시리스) 일대에 있을 가능성을 제기하며 발굴 작업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지진과 해수면 상승으로 고대 알렉산드리아의 상당 부분이 바다 밑에 잠긴 상태라 탐사가 어렵지만, 미라가 없다는 것이 곧 미라화되지 않았다는 증거는 결코 아닙니다.
결론
정리하자면, 클레오파트라는 이집트의 마지막 파라오로서 전통에 따라 미라화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으며, 반대되는 증거는 없습니다. 다만 그녀의 무덤이 아직 발굴되지 않았기 때문에 후세에 미스터리로 남아 있는 것일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