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분(무덤)이 만들어지게 된 이유』라는 글을 쓰면서 철에 대해서도 함께 조사하게 되었다.
이번 글은 일본사와 직접적인 관련은 없을 수도 있지만, 조사하며 느낀 점과 잡학(트리비아)을 정리해 보려 한다.
기억에 의존해 작성한 글이므로 연구를 위한 참고 자료 정도로 활용해 주길 바란다. 참고로 이 주제는 일본사에 국한되지 않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최초로 철을 사용한 나라, 히타이트
기원전 1500년경부터 히타이트는 철분을 다량 함유한 운석을 이용해 철기를 만들기 시작한 것으로 보이며, 최초로 철을 사용한 나라로 언급된다.
이처럼 철분이 풍부한 운석은 철운석(隕鐵)이라고 불린다.
흥미롭게도 히타이트는 내전으로 인한 식량 부족, 그리고 가공에 필수적인 연료(목재)의 감소 등 여러 요인(다양한 학설이 있다)으로 인해 멸망한 것으로 전해진다.
중국 대륙에서의 철 사용
인접한 중국 대륙에서는 춘추전국시대에 철 주조가 시작되었으며, 유럽보다 무려 1500년이나 앞선 철 기술을 갖추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철운석이 아닌, 청동기를 만들던 시절 고안한 풀무(벨로우즈)를 이용해 온도를 끌어올리는 방식으로 철을 제련했다.
그러나 과도한 삼림 벌채로 인한 환경 파괴 탓에 철 기술이 폐지되었다고 한다.
결국 영토가 넓고 자원이 풍부한 나라일수록 사방이 적으로 둘러싸여 있어 대량생산이 불가피한데, 지금 돌이켜보면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참고로 일본 역시 고대부터 인구 조절에 고심해 왔다는 글을 본 기억이 있다. 환경 문제와 인구 문제는 지금 우리에게도 직결되는 과제이기에 더욱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다.
일본 열도에는 신화로 남아 있다!?
기비의 철 이야기는 모모타로(복숭아 도령) 전설로 전해지며, 이즈모에서는 철 이야기가 신화 형태로 남아 있다는 설이 있다.
신화와 관련해서는, 스사노오가 야마타노오로치를 퇴치하는 장면이 실은 제철(製鐵) 과정을 상징한다는 해석을 편 블로그도 있었다. 같은 맥락에서 "제철이 아니라 홍수 대책이 아니었을까?"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신화가 사실을 그대로 담고 있지는 않지만, 어떤 부분은 은유로 남아 있을 가능성이 있기에 앞으로 더 깊이 들여다보고 싶다.
니혼쇼키(일본서기)의 기술 ※2014년 11월 29일 추가
720년에 완성된 것으로 알려진 니혼쇼키(일본서기)의 일부에 흥미로운 기술이 있어 소개한다.
역사 『이타키소 신사(伊太祁曽神社)』에서 발췌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이소타케루(五十猛命) 신이 식목의 신으로 강림할 때 많은 나무 씨앗을 가지고 왔지만, 신라에는 심지 않고 일본에만 심었다." 또한 "신라에는 금은보화가 있지만 일본에는 없다. 대신 삼나무·편백·곡수(마키)·녹나무를 보물로 삼자"는 내용이다.
또한 편백이 신사(社殿)를 짓는 재료로 사용되었다고 하나, 야요이 시대에는 주로 다른 나무가 사용되었기 때문에 이 이야기는 고분 시대 이후의 것으로 여겨진다.
여기서 의문이 드는 점은, 대체 왜 신라에는 심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이 시점에서 이미 신라의 숲이 고갈되었을 가능성은 없을까?
철은 나라를 세우는 데 중요한 자원이지만, 그것을 만들기 위해서는 풍부한 산림 자원이 필요했다. 구슬과 소금 외에도, 일본에서는 당연하게 여겨지던 나무가 교역의 중요한 카드 중 하나였을지도 모른다.
※2017년 9월 13일 업데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