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시대는 무로마치 시대 말기부터 아즈치모모야마 시대와 겹쳐 전개되기 때문에, 무로마치 시대 전체의 흐름이 잘 그려지지 않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이번 글에서는 무로마치 막부가 성립한 시점부터 멸망에 이르기까지의 흐름을 시대순으로 정리했습니다. 일본 중세사를 이해하는 데 참고가 되길 바랍니다.
무로마치 막부의 성립과 남북조의 동란
가마쿠라 막부가 멸망한 뒤, 고다이고 천황은 조정(공가) 중심의 정치를 되살리기 위한 새로운 정권, 즉 겐무 신정을 시작합니다. 그러나 이 정책은 무사 계급의 큰 반발을 불러일였고, 협력자였던 아시카가 다카우지와 대립하면서 겨우 몇 년 만에 붕괴하고 만니다.
이렇게 하여 고다이고 천황과 아시카가 다카우지는 각자 진영을 세우며 남북조 시대로 접어들게 됩니다.
남조의 쇠퇴와 남북조 통일
겐무 신정이 붕괴한 뒤인 1336년, 아시카가 다카우지는 고묘 천황을 옹립하여 무사 중심의 새 정권 운영 방침을 담은 「겐무 시키목」을 반포합니다. 고묘 천황 측을 북조(교토)라 부르며, 이때가 실질적인 무로마치 막부의 성립으로 여겨집니다.
반면 고다이고 천황은 다카우지의 배반 이후 요시노 산속으로 들어가 그곳에서 남조를 세웁니다. 이로써 약 60년에 걸친 남북조 시대가 시작됩니다.
1338년에는 남조 진영의 구스노키 마사시게와 니타 요시사다가 차례로 전사하고, 고다이고 천황마저 붕어하면서 군사적 주도권은 북조 쪽으로 기울게 됩니다.
같은 해 다카우지는 쇼군에 임명되고, 동생 다다요시와 함께 정치를 분장합니다. 그러나 1350년경 다카우지의 집사 코노 모로나오와 다다요시 사이에 갈등이 터지면서 관내란(觀應擾亂)이 발생합니다.
이 과정에서 다다요시는 진영이 찢기자 남조로 귀순하기도 합니다. 이 내분은 다카우지·다다요시 형제가 모두 세상을 떠난 뒤에도 이어져, 막부 측 대 다다요시 파·남조 구도의 싸움이 10년 넘게 지속됩니다.
이 남북조의 대립은 3대 쇼군 아시카가 요시미츠의 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수습되고, 막부 체제가 본격적으로 자리 잡게 됩니다.
무로마치 막부와 슈고 다이묘
3대 쇼군 아시카가 요시미츠는 남북조 통일(1392년)을 실현하여 내란을 종식시키는 데 성공합니다. 요시미츠는 1378년 교토의 무로마치 저택으로 거처를 옮겨 그곳에서 정무를 펼쳤는데, '무로마치 막부'라는 이름도 바로 여기서 유래했습니다.
동시에 요시미츠는 여러 동란 속에서 세력을 불린 슈고 다이묘인 토키 씨·야마나 씨·오우치 씨 등 유력 다이묘들을 견제하고 공격하여 그 힘을 약화시키려 했습니다.
이 무렵 무로마치 막부의 조직 구조가 정비됩니다.
간레이(管領): 쇼군을 보좌하고 막부를 총괄하는 직책
스바 씨, 하타케야마 씨, 호소카와 씨 등 '삼관령' 가문에서 선임
슈시(侍所): 교토 안팎의 치안과 재판을 담당하는 직책
야마나 씨, 잇시키 씨, 아카마츠 씨, 쿄고쿠 씨, 토키 씨 등 '사직(四職)' 가문에서 선임
이들 다이묘들은 교토에 머물며 막부의 요직을 맡는 것이 관례가 되었고, 그 결과 각자의 영지는 대리인인 슈고다이(守護代)가 대신 다스리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오닌의 난과 막부의 쇠퇴
아시카가 요시미츠·요시모치의 시대에는 쇼군과 슈고 다이묘 사이의 균형이 어느 정도 유지되었습니다. 그러나 6대 쇼군 요시노리 대에 이르러 쇼군 권력 강화를 위해 폭정을 일삼기 시작합니다.
1438년, 요시노리는 막부에 반기를 든 아시카가 모치우지의 가마쿠라 공방을 공격해 멸망시킵니다. 이후 유력 다이묘들까지 억누르자, 결국 슈고 다이묘 아카마츠 미츠스케가 요시노리를 살해하는 가키츠의 변(1441년)이 일어납니다.
이 사건을 기점으로 쇼군의 권위는 급격히 추락했고, 각지의 유력 다이묘들은 물론 쇼군 가문 내부에서도 가독(家督) 상속 분쟁이 끊이지 않게 됩니다.
1467년, 이러한 상속 분쟁들이 겹치면서 호소카와 카츠모토와 야마나 소젠이 대립하는 오닌의 난이 발발합니다. 교토는 전장으로 변해 도시 대부분이 불탔으며, 이 전란은 전국시대의 서막으로 평가받습니다.
오닌의 난 이후 호소카와 마사모토는 쇼군의 폐위와 옹립에 개입하며 막부를 장악하는 데 성공하지만, 마사모토 사후 호소카와 가문 역시 가독 분쟁으로 혼란이 깊어집니다.
이 시기 쇼군 가문은 각지의 다이묘 밑에 몸을 의지하며 명목상으로만 존재했을 뿐, 막부 중심 정권으로서의 권위를 상실한 상태였습니다. 쇼군을 옹호한 다이묘가 그때그때 실권을 쥐는 형국이었습니다.
실권자의 교체 흐름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아시카가 씨 ⇒ 호소카와 씨 ⇒ 미요시 씨
시간이 흘러 오다 노부나가가 등장하고, 노부나가의 후원으로 무로마치 막부의 마지막 15대 쇼군 아시카가 요시아키가 취임하며 상경(上洛)이 이루어집니다.
요시아키는 노부나가의 후원으로 쇼군이 되었지만, 막부 부흥을 바라던 요시아키와 무력으로 천하를 제압하려던 노부나가 사이에는 생각의 차이가 컸습니다. 결국 두 사람은 충돌하게 되고, 요시아키는 타케다 신겐과 아사쿠라 요시카게 등에 호응을 요청해 '노부나가 포위망'을 형성하지만, 노부나가에게 격퇴당하고 만니다.
이러한 행보에 분노한 노부나가는 1573년 요시아키를 교토에서 추방합니다. 일반적으로 무로마치 막부는 이때 멸망한 것으로 봅니다.
1573년 요시아키 추방으로 막부가 무너진 시점이 곧 아즈치모모야마 시대의 시작으로 간주되는 것이 통설입니다.
또한 이른바 전국시대는 1467년 오닌의 난부터 1590년 히데요시의 천하 통일까지를 가리키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만 세키가하라 전투나 오사카 전투까지를 전국시대로 보는 견해도 있고, 무로마치 막부의 멸망 시점을 달리 해석하는 설도 존재합니다.
혼노지의 변 이후에도 쇼군이었던 아시카가 요시아키의 말년
무로마치 막부의 15대 쇼군 아시카가 요시아키는 혼노지의 변으로 노부나가가 최후를 맞은 뒤에도 명목상 쇼군 자리에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히데요시가 천하를 장악하자 쇼군직에서 물러났습니다.
이후 요시아키는 히데요시로부터 야마시로국 1만 석을 받아 여생을 보냈다고 합니다. 비록 1만 석이지만 전직 쇼군이라는 특수한 지위 덕분에 다이묘급 대우를 받았다고 전해집니다.
만년의 요시아키은 이야기 솜씨가 뛰어난 인물이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