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막부라고 하면 쇼군(장군)이 먼저 떠오르기 마련입니다. 무로마치 막부에서는 아시카가 씨가, 에도 막부에서는 도쿠가와 씨가 대대로 쇼군 자리에 앉았습니다.
그렇다면 가마쿠라 막부의 개창자인 미나모토노 요리토모를 따라 역대 겐지(源氏)가 쇼군을 세습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상은 조금 다릅니다.
잘 생각해 보면 무로마치 막부든 에도 막부든 '제○대 쇼군 ○○'라는 식으로 이름이 쭉 이어지지만, 가마쿠라 막부의 경우 제3대 쇼군 미나모토노 사네토모까지가 끝이고, 그 뒤로는 권력을 쥔 호조 씨의 이름만 등장합니다.
그렇다면 가마쿠라 막부에는 사네토모 이후 쇼군이 없었던 걸까요?
가마쿠라 시대를 공부하다 보면 이런 의문이 자연스럽게 생기곤 합니다. 오늘은 가마쿠라 막부의 역대 쇼군을 하나씩 정리해 보겠습니다.
가마쿠라 막부의 역대 쇼군
사실 가마쿠라 막부에도 쇼군은 끊기지 않고 계속 이어졌습니다. 역대 쇼군은 모두 9대에 달하는데요. 다른 무가 정권과 달리 제4대 이후의 쇼군은 겐지가 아니라 섭관가(摂家), 이어서 황족(미야케) 출신이 앉게 됩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차근차근 설명드리겠습니다.
먼저 가마쿠라 막부의 9대 쇼군 목록부터 살펴보겠습니다.
겐지 쇼군
- 제1대 쇼군 미나모토노 요리토모(1192~1199)
- 제2대 쇼군 미나모토노 요리이에(1202~1203)
- 제3대 쇼군 미나모토노 사네토모(1203~1219)
섭가 쇼군
- 제4대 쇼군 구조 요리츠네(1226~1244)
- 제5대 쇼군 후지와라노 요리츠구(1244~1252)
미야케(황족) 쇼군
- 제6대 쇼군 무네타카 친왕(1252~1266)
- 제7대 쇼군 고레야스 친왕(1266~1289)
- 제8대 쇼군 히사아키 친왕(1289~1308)
- 제9대 쇼군 모리쿠니 친왕(1308~1333)
이 목록을 보면 제4·5대는 섭관가인 후지와라 씨 출신이며, 제6대 이후에는 황족에서 쇼군을 맞아들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참고로 가마쿠라 막부의 성립 연도는 통상 1185년이 아닌 1192년으로 봅니다.
호조 씨의 대두
1192년 가마쿠라 막부를 연 미나모토노 요리토모는 1199년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납니다. 그의 뒤를 이은 것은 당시 18세였던 미나모토노 요리이에였습니다.
하지만 젊은 요리이에에게 정무를 일임하기에는 부담이 컸기 때문에, 유력 고케닌(御家人)들은 '십삼인 합의제'라 불리는 합의체를 만들어 요리이에 대신 정무를 운영했습니다. 이 합의제의 중심에는 바로 호조 씨가 있었습니다.
1203년 요리이에가 병을 얻으면서 동생 미나모토노 사네토모가 쇼군 자리에 올랐고, 곧이어 요리이에가 사망합니다. 이 무렵부터 실권을 쥔 호조 도키마사가 쇼군 사네토모를 보좌하며 정치의 주도권을 잡기 시작합니다.
섭가 쇼군의 탄생
이 무렵부터 막부 내부의 권력 다툼이 거듭되면서 호조 씨에 맞서는 세력이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했고, 1219년 마침내 쇼군 미나모토노 사네토모가 암살당합니다. 사네토모 사후 요리토모의 형제들을 포함한 겐지 직계의 혈통은 사실상 단절되었습니다.
막부를 장악하고 있던 호조 씨 입장에서는 겐지의 잔여 세력이 정치에 개입하는 것이 불편했기 때문에, 요리토모와도 인척 관계였던 섭관가 출신의 구조 요리츠네를 새 쇼군으로 맞아들입니다.
앞선 목록을 보면 사네토모와 구조 요리츠네 사이에 쇼군이 공석인 기간이 있는데, 바로 이 시기에 고토바 상황이 일으킨 조큐의 변(承久の乱)이 발발합니다.
이렇게 두 대에 걸쳐 이어진 섭가 쇼군은 관위 면에서 겐지 쇼군과 큰 차이가 없었지만, 황족에 필적하는 고귀한 신분 덕분에 지금까지의 가마쿠라 쇼군과 달리 무가 영주로서의 성격을 띠지 않았고, 호조 씨는 이를 활용해 쇼군을 정치에서 멀리 둘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구조 요리츠네·요리츠구 부자는 성장하면서 독자적인 통치 의욕을 드러내고 실권자인 호조 씨에게 반항적인 태도를 보였고, 결국 두 사람 모두 쇼군직에서 쫓겨나고 맙니다.
미야케(황족) 쇼군의 탄생
이에 1252년 집권 호조 도키요리는 고사가 천황의 제1황자인 무네타카 친왕을 새 쇼군으로 맞아들입니다.
고토바 상황의 조큐의 변에서 비록 막부가 승리했지만, 쇼군은 조정에 의해 임명된다는 구도는 여전히 유효했습니다. 만약 막부가 조정을 적으로 돌린다면 통치의 정당성을 잃을 우려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6대 이후 쇼군을 황족에서 맞이함으로써 가마쿠라 막부와 조정을 연결하고, 막부 존립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데 큰 의미를 지니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1252년부터 가마쿠라 막부 멸망 때까지 쇼군은 대대로 황족이 맡게 되었고, 쇼군이 정치에 관여하지 않는 것이 관례처럼 굳어졌습니다. 한편 쇼군 위에 군림하게 된 호조 씨는 권력을 호조 종가, 즉 '득종(得宗)'에 집중시켰고, 이 같은 정치 체제를 '득종 전제'라고 부릅니다.
호조 씨는 왜 스스로 쇼군이 되지 않았을까?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남습니다.
이토록 강력한 권력을 쥔 호조 씨는 왜 쇼군이 되지 않고 '집권(執權)'이라는 자리에서 막부의 실권만 행사했을까요?
막부의 정점은 쇼군입니다. 차라리 쇼군이 되는 편이 좋아 보이는데 말입니다.
그 이유는 가마쿠라 막부의 쇼군은 고케닌들에게 일정 수준의 구심력을 발휘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이즈의 작은 호족 출신에 불과했던 호조 씨로서는 명문 혈통이 지니는 카리스마로 쇼군 자리에 설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호조 씨에게 가장 현명한 선택은, 겉으로는 쇼군을 내세우고 뒤에서 실권을 쥐는 정치 방식이었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