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의 역사

일본 47개 현은 사실 재편성될 뻔했다!? 메이지 정부의 '환상의 28개 현' 계획

메이지 시대, 폐번치현으로 탄생한 47개 현

일본은 메이지 시대부터 지금까지 47개 현(縣)으로 나뉘어 왔습니다. 이 체계는 메이지 초기에 단행된 폐번치현(廃藩置県)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당시 오쿠보 도시미치(大久保利通)가 새 정부의 권력을 중앙에 집중시키기 위해 강력하게 추진한 정책이었습니다.

현 통합의 변천 과정

폐번치현 직후에는 무려 3부 302현이 존재했습니다. 그러나 1차 현 통합을 거쳐 1871년에는 3부 72현으로 크게 줄어들었습니다.

그로부터 5년도 지나지 않은 1876년, 2차 현 통합이 단행되면서 행정구역은 다시 한번 대폭 재편되었습니다.

그 결과 3부 72현 ⇒ 3부 35현으로 재조직되었고, 수많은 현이 소멸하면서 현 이름도 현재와 거의 비슷한 모습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분현운동과 47개 현의 확립

현재의 47개 현보다 수가 적다는 점에 의문을 가진 독자도 많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현의 수를 획기적으로 줄인 결과, 도쿠시마·후쿠이·돗토리 등 여러 현이 소멸했고, 이에 따라 해당 지역에서는 분현운동(分県運動)이 일어났습니다.

12년에 걸친 운동 끝에 도쿠시마, 후쿠이, 돗토리, 도야마, 사가, 미야자키, 나라, 가가와의 8개 현이 부활했고, 이렇게 하여 현재의 47개 현 체제가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메이지 정부는 이 47개 현조차 더욱 재편할 계획을 갖고 있었습니다.

'환상의 28개 현' 구상

그것이 바로 현을 28개로 통합하려던 구상입니다.

예를 들어 기타칸토 3개 현인 이바라키·군마·도치기는 우쓰노미야현으로, 아이치현과 기후현 일부, 시즈오카현 하마마츠 주변 지역은 나고야현으로 통합될 예정이었습니다.

문화적 연관성을 고려해 경계를 세심하게 나누었다고 전해집니다. 특히 사쓰마의 흐름을 잇는 가고시마현은 미야자키현과 합병하여, 옛 사쓰마 번의 지배 영역과 거의 같은 범위를 이루게 될 예정이었습니다.

이렇게 1903년(메이지 36년), 내무성은 19개 현을 폐지·통합해 28개 현으로 재편한다는 현 폐치 합병안(縣廢置合併案)을 마련했고, 계양 내각이 이를 각의(閣議)로 결정했습니다. 각 현의 경계선까지 정해진 이 법안은 1904년 시행될 예정이었지만, 같은 해 러일전쟁이 발발하면서 결국 실현되지 못하고 환상으로 남았습니다.

만약 28개 현 체제였다면?

메이지 시대에 확립된 47개 현이 지금까지 그대로 이어져 온 만큼, 이를 더 합리적으로 통합하려던 28개 현 구상은 매우 흥미로운 주제입니다.

예컨대 기타칸토 3개 현이 통합되면 바다에 접한 현의 반열에 올라 입지가 크게 개선될 것이고, 호쿠리쿠의 도야마·이시카와·후쿠이 3개 현도 하나로 묶이면 훨씬 기억하기 쉬워집니다.

한편, 그토록 합리적인 통합·폐지가 추진되었는데도 나가노현만은 지금과 똑같은 모습을 유지하게 된 이유는 조금 더 알아두고 싶은 대목입니다.

그로부터 약 120년이 지난 지금, 메이지 유신 이래 최대 규모의 개혁으로 불리는 도주제(道州制) 논의는 최근 한동안 정체 상태에 있습니다. 하지만 도주제를 논의할 때 이 28개 현 구획을 참고 자료로 삼아 보는 것도 하나의 선택지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