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의 역사

호소카와 마사모토의 쿠데타, 무로마치 막부의 운명을 바꾼 '명응의 정변'

오닌의 난(1467~1477) 이후 혼란이 이어지던 무로마치 막부. 오미를 다스리던 롯카쿠 가문이 각지의 영지를 강점하며 세력을 키워나가자, 제9대 쇼군 아시카가 요시히사는 직접 토벌에 나섰지만 원정 도중 병사하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막부에는 다시 후계 문제가 불거졌습니다. 호소카와 마사모토는 요시마사의 조카이자 양자였던 아시카가 요시즈미를 밀었지만, 히노 도미코는 자신의 아들이자 요시미의 아들인 요시타네를 추천했습니다. 제8대 쇼군이었던 요시마사 역시 요시타네를 지지했기 때문에, 결국 요시타네가 제10대 쇼군으로 즉위하게 됩니다.


이 결정에 호소카와 마사모토는 불만을 품었고, 요시미 부자와 히노 도미코를 깊이 불신하게 됩니다.


제10대 쇼군이 된 요시타네는 선대의 방침을 이어받아 다시 롯카쿠 가문 토벌에 나섰습니다. 그러나 전투는 롯카쿠 다카요리를 고카로 내쫓는 데 그쳤고, 뚜렷한 성과를 확보하지 못한 채 약 1년 만에 교토로 돌아오고 맙니다.

명응의 정변 이전, 쇼군 후계 분쟁

1490년, 은거 생활을 하던 제8대 쇼군 요시마사가 사망하면서 요시미·요시타네 부자의 전횡이 두드러지기 시작했습니다. 한때 요시타네를 지지했던 히노 도미코조차 이들 부자에게서 거리를 두게 됩니다.


한편 호소카와 마사모토는 요시미 부자와 히노 도미코에 대한 불만을 배경으로, 막부의 실무를 총괄하던 이세 사다무네 등과 함께 쿠데타를 계획합니다.


여기에 슈고 대명문인 하타케야마 가문의 가독 상속 분쟁이 얽히게 됩니다. 호소카와 마사모토의 아버지 카츠모토가 옹립한 바 있던 하타케야마 마사나가는, 자신의 경쟁자인 하타케야마 요시토요를 토벌해 달라고 쇼군 요시타네에게 요청하며 하타케야마 일문을 자신의 중심으로 통일하려 했습니다.


쇼군 입장에서는 호소카와 마사모토에 대한 의존도를 줄일 명분이 생긴 셈입니다. 요시타네는 마사나가를 자기 진영으로 끌어들이고자 그의 소원을 받아들여 카와치 국의 하타케야마 요시토요 토벌에 직접 출진합니다. 많은 다이묘가 참전했지만, 마사모토는 이에 반대하며 출진을 거부했습니다.


같은 간레이(管領)인 하타케야마 가문이 스스로 무너져 주면 좋겠지만, 만약 쇼군이 개입해 분쟁을 수습한다면 호소카와 가문이 천하를 장악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쇼군 친정 덕분에 전황 자체는 우세했지만, 마사모토는 적진에 있던 하타케야마 요시토요에게 몰래 지원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이 무렵 마사모토는 이세 씨, 아카마쓰 씨, 나아가 히노 도미코까지 자기 편으로 만들어, 쿠데타 실행만 남겨둔 상태였습니다.

명응의 정변(明應의 政變)

이 쿠데타는 과거 쇼군이 암살된 가키쓰의 난과 달리, 쇼군을 살해하는 방식이 아니었습니다. 대신 차기 쇼군 후보인 요시즈미를 보호하고, 요시타네를 지지하는 세력과 후계 구도를 하나하나 제거하는 형태로 진행되었습니다.


기록에는 이 쿠데타를 히노 도미코가 주도했다고 전해지지만, 진상은 확실하지 않습니다. 호소카와 마사모토는 당일 제10대 쇼군 요시타네를 폐위시키고, 곧바로 제11대 쇼군 요시즈미를 옹립했습니다.


원정지에 있던 다이묘들은 현직 쇼군이 전장에 나가 있는 사이 폐위되는 초유의 사태에 발이 묶였습니다. 게다가 롯카쿠 정벌에 이어 카와치 정벌까지 이어지며 전비는 눌어붙고 사기는 바닥을 친 상태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쿠데타가 일어났으니 오늘부터 요시타네는 더 이상 쇼군이 아니다'라는 통보가 내려오자, 대부분의 다이묘는 마침 좋은 기회라 여겨 잇달아 귀국했고, 제11대 쇼군 요시즈미 측을 따르기로 결정합니다.


폐위된 쇼군의 편에 끝까지 남은 이는 하타케야마 마사나가뿐이었습니다.


이 명응의 정변으로 쇼군의 권위는 바닥까지 추락했습니다. 오닌의 난으로 이미 힘을 잃은 시바 씨에 이어 하타케야마 가문도 몰락하면서, 간레이직은 호소카와 가문이 독점하게 되고, 호소카와 가문은 미요시 씨가 흥기할 때까지 막부를 장악하게 됩니다.

명응의 정변이 열어준 전국시대

통상 오닌의 난으로 막부의 권력이 크게 쇠퇴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그 쇠퇴에 결정타를 꽂은 것이 바로 명응의 정변입니다. 전국시대의 시작을 오닌의 난(1467년)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나, 최근에는 명응의 정변(1493년)을 전국시대의 출발점으로 보는 견해도 유력하게 제기되고 있습니다.


이 정변으로 호소카와 마사모토는 막부 장악에 성공하지만, 그 역시 훗날 호소카와 가문의 가독 분쟁 속에서 암살당하면서, 막부 권력을 둘러싼 항쟁은 한층 더 혼란스러워집니다. 이후 미요시 씨가 막부를 장악하고, 다시 그 권력이 마쓰나가 히사히데에게 넘어가는 등 혼란은 거듭됩니다. 무엇보다 이 정변을 계기로 신분이 낮은 자가 웃자리를 타도하고 질서를 뒤엎는 '하극상(下剋上)'의 풍조가 정치·군사적으로 전국 각지로 확산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제10대 쇼군 아시카가 요시타네의 이후 행적

명응의 정변으로 폐위된 요시타네는, 새 쇼군이 된 요시즈미 측에 유폐되었습니다. 그러나 하타케야마 마사나가 등의 도움으로 탈출에 성공해 에추 국으로 낙향하면서 '에추 공방(越中公方)'이라 불립니다.


이후 에치젠의 아사쿠라 씨에 의지해 아사쿠라 사다카게와 함께 재상경(再上洛)을 노렸지만, 번번이 패배를 거듭했습니다. 결국 스오의 오우치 씨에 의지해 다시 쇼군으로 복위하게 되는데, 이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자세히 다루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