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의 역사

오다 노부나가의 락이치 락자(樂市樂座), 그 목적은 무엇이었을까?

미노국을 둘러싼 사이토 씨와 오다 씨

1541년, 도키 요리나리가 사이토 도산에 의해 미노국에서 쫓겨나면서 미노는 사이토 가문의 지배 아래 놓이게 되었습니다.

노부나가의 아버지 오다 노부히데 역시 1547년 미노를 공격했지만, 이나바야마성의 철벽 같은 방어 앞에서 패배하고 말았습니다. 이후 강화 과정에서 사이토 도산의 딸 노히메와 오다 가문 장남 노부나가의 혼약이 결정됩니다.

쇼토쿠지에서 열린 노부나가와 도산의 회견에서 도산은 노부나가의 재능을 알아보았고, 동시에 '언젠가 미노국은 결국 노부나가의 것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해집니다.

미노 공략과 '천하포무'의 포부

1556년, 사이토 도산은 아들 요시타츠에게 패배하여 생을 마감합니다. 패배하기 전 도산은 '미노국을 사위 노부나가에게 넘겨주겠다'는 유언을 남겼고, 노부나가는 '장인(舅)의 원수'를 갚는다는 명분으로 사이토 가문 토벌에 나섰습니다.

미노 공략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별도의 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미노 공략에 성공한 노부나가는 이나바야마성의 성하마치였던 이노구치(井ノ口)를 '기후(岐阜)'로 개명했습니다. 기후라는 이름은 인민을 사랑하는 정치를 폈다고 전해지는 중국 고대 주나라 문왕이 기산(岐山)에서 기업했다는 고사에서 따온 것입니다.

당시 백성들은 '전국 시대를 하루빨리 종식시켜 태평한 세상을 만들어 달라'며 갈망하고 있었습니다. 민심을 파악한 노부나가 역시 주 무왕처럼 나라를 안정시키고 백성의 번영을 보장하고 싶었고, '천하인(天下人)'이 되기로 결심합니다.

천하포무를 위한 개혁

천하포무(天下布武)를 위해 노부나가는 가신단의 합리화와 현대화 등 다양한 개혁을 추진했습니다. 그 핵심은 병농분리(兵農分離)와 락이치 락자(樂市樂座)였습니다.

병농분리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별도 글에서 다루고 있습니다.

병농분리를 실시하면 군인들의 생활을 책임질 상인이 필요해집니다. 그러나 적이 언제 공격해올지 모르는 전국 시대의 성하마치에는 상인들이 좀처럼 모여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노부나가가 내놓은 해법이 바로 '락이치 락자'였습니다.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 상인 유치를 위해 특정 토지를 무료로 빌려주고 연공(年貢)을 면제한다.
  • 기후 성하마치에 들어온 상인은 자유롭게 경쟁할 수 있다. ※현대식으로 표현하면 '규제 완화'
  • 성하마치 정비는 노부나가의 계획과 자금으로 진행한다.

오다 노부히데·노부나가 부자는 경제 감각이 뛰어난 인물이었습니다. 노부히데는 기요스성 시절부터 인근 상업 도시 쓰시마를 관리하며 이곳에서 올라오는 부를 흡수해 재산을 불렸습니다.

훗날 노부나가는 '선전(選銭)' 법령을 반포합니다. 이는 질 좋은 화폐를 유통시키고 질 나쁜 화폐를 배제하겠다는 내용입니다.

또한 일본에 온 기독교 선교사들을 통해 외국 문화를 접하면서 국제 교류에 적극적으로 나섰고, 외래 문화를 성하마치에 받아들였습니다. 기후 성하마치를 찾은 선교사들은 이곳을 '바빌론과 같은 도시'라고 평가했다고 합니다.

당시 가치관을 바꾸며 만들어낸 새로운 문화

당시 일본에는 '카타이(固い)'라는 사고방식이 있었습니다. '카타이'는 곧 '땅'을 뜻했고, '자신의 영지를 지키며 빼앗으려는 자와 목숨을 걸고 싸운다'는 것이 지극히 자연스러운 발상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발상에 집착하면 시대에 맞는 개혁을 이룰 수 없다고 본 노부나가는 사람들의 가치관 자체를 바꾸려 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사카이(堺)의 거리에서 유행하던 다도 문화였습니다.

노부나가가 도입한 다도 문화는 훗날 도자기 산업의 발전으로 이어졌습니다. 아울러 주택, 조경, 식목, 꽃 재배, 의복 개선, 고급 음식의 대중화 등 커다란 성과를 낳았습니다.

이 문화는 '아즈치 문화'라 불리며, 이를 계승한 것이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모모야마 문화'입니다. 그 기반에는 다도 문화의 산업화가 뒷받침하고 있었습니다.

앞서 언급한 '땅을 지킨다'는 구시대적 발상을 바꾸기 위해 노부나가는 히에이산 소각과 잇코잇키 토벌에 나섰다고 여겨집니다. 기존 상식을 바꾸기 위해서는 과감한 결단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노부나가의 락이치 락자 제정은 기존 상인 조합(座)의 특권적 이익을 박탈하고 상업을 자유경쟁으로 전환시켰으며, 물류와 사람의 이동을 막는 장벽과 관소(關所)를 점차 철폐해 나갔습니다.

또한 일본인이라면 어디든 자유롭게 갈 수 있다는 발상 아래, 상인들은 어디에서든 자유롭게 장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오다 씨 영지 곳곳에 락이치 락자가 설치되었고, 자유경제 정책이 확산되어 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