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의 역사

전후 일본인의 생활 변화, 1945년부터 현재까지

전쟁이 끝난 뒤부터 오늘날까지, 일본의 생활상은 수많은 변화와 사건을 거치며 극적으로 바뀌어 왔습니다.

전쟁이 끝난 1945년 직후만 해도 일본은 미군의 공습으로 산업 시설이 파괴되고 막대한 인명 피해와 극심한 빈곤에 시달려, 동아시아 최선진국이라는 말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황폐한 상태였습니다.

그렇다면 전쟁 이후 일본인의 생활은 어떻게 변화해 왔을까요? 시대별로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전후 직후, 1945년 무렵 일본의 생활

공습으로 집을 잃은 사람들은 통나무를 엮어 지은 임시 가옥에서 하루하루를 버텼습니다. 앞서 언급한 건물이 바로 이런 임시 주거 시설을 가리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크게 유행한 것이 바로 암시장(야미시장)이었습니다.

암시장은 물가 통제 제도 아래에서 물품이 극도로 부족해지자, 통제를 벗어난 불법적인 가격을 매기고 독자적인 시장 경제 원리에 따라 거래가 이루어지던 곳입니다. 당시에는 물건이 부족해도, 돈이 있어도 정상적인 상점에서는 아무것도 살 수 없었지만, 암시장에 가면 돈이 힘을 발휘해 무엇이든 구할 수 있었습니다.

다만 일반 서민들에게는 암시장에서 물건을 살 만큼 돈이 없었기 때문에, 대다수 사람들이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야 했습니다.

공산주의와 6·25 전쟁

빈곤에 시달리는 나라에는 공산주의가 확산되기 쉽다는 징크스가 있는데, 당시 일본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공산주의란 재산의 일부 또는 전부를 공동으로 소유함으로써 평등한 사회를 실현하고자 하는 사회 철학을 말합니다.

그러나 일본을 점령하고 통치하던 미국은 공산주의에 적대적이었으며, 일본이 공산 진영으로 넘어가지 않도록 필사적으로 막았다고 전해집니다.

바로 그 무렵 한반도에서 6·25 전쟁이 발발했고, 미국은 대한민국 지원용 군수물자 생산을 일본에 맡겼습니다. 이른바 '특수(特需)' 덕분에 일본에 대한 수요가 꾸준히 늘어났고, 미국의 지원과 더불어 어떻게든 전후 복구의 길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고도경제성장기, 1950년대 후반~1960년대

6·25 전쟁 특수로 복구의 길에 들어선 일본은 전쟁 전과 거의 같은 수준까지 재건되며, '더 이상 전후가 아니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가 되었습니다.

1955~1960년경에는 지금은 흔히 볼 수 있는 흑백 TV, 냉장고, 세탁기 같은 가전제품이 가정에 보급되기 시작했습니다. '단지(團地)'라 불리는 획기적인 아파트 단지가 지어지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입니다.

또한 식생활도 서구화되어 식탁 위에 크로켓과 오므라이스가 오르고, 옷차림도 다양해졌으며, 해외여행을 떠나는 사람도 나타났습니다. '자이언츠, 다이호, 계란말이'라는 유행어가 탄생한 것도 바로 이 시기입니다.

1964년, 일본의 부흥을 상징하는 대event가 열립니다. 바로 도쿄 올림픽입니다.

1964년 도쿄 올림픽을 계기로 신칸센과 고속도로가 정비되었고, 도쿄 일대는 빌딩 건설 붐으로 뜨거웠습니다. 올림픽에 맞춰 새로운 '세 가지 신기'인 컬러 TV, 에어컨, 자동차(3C)가 국민 모두의 동경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또한 1970년에는 오사카에서 만국박람회(오사카 엑스포)가 개최되었고, 요즘 흔한 휴대전화의 원형이 되는 기기와 공항의 무빙워크가 등장하며 일본 전체가 들떴습니다.

1975년~1989년의 생활

1980년, 전쟁 후 35년이 지난 시점에서 일본의 GDP는 선진국 중 2위를 차지했고, 전후 직후의 흔적은 온데간데없이 국민 생활은 안정기를 맞이했습니다. 오일 쇼크 같은 불황도 있었지만, 일본은 더욱 발전을 거듭했습니다.

하라주쿠의 '다케노코족'이나 보행자 천국(차량 통행 금지 거리)이 등장한 것도 이 무렵으로, 지금 생각하면 믿기 힘든 광경이었습니다.

쇼와 시대가 저물어 갈 무렵 경제는 꾸준히 성장을 이어갔고, 고도성장기만큼은 아니지만 안정성장기에 접어들면서 기업에는 워드프로세서와 개인용 컴퓨터가 보급되기 시작했습니다.

맥도날드, KFC 같은 패스트푸드점이 진출한 것도, 일본 최초의 편의점이 탄생한 것도 이 시기였습니다.

그로부터 몇십 년 뒤 개인용 컴퓨터와 스마트폰이 보편화되고, 편의점을 걸어서 쉽게 찾을 수 있게 될 미래를 그때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요?

버블 경제

1985년, 플라자 합의라는 국제 회의에서 엔화 절상이 추진되면서 일본에 버블 경제가 찾아오기 시작했습니다.

버블 시대라 불리는 1987~1991년에는 그동안 상상도 못 했던 일들이 일본에서 벌어졌습니다.

첫 번째는 취업 풍조의 변화입니다. 당시에는 구직자가 회사를 찾아 면접을 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회사가 구직자를 접대하고 붙잡아 두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해외여행까지 시켜 주며 다른 회사에게 인재를 빼앗기지 않으려는 기업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 여파로 오락 비용은 두 배로 뛰었고, 명품을 사재기한 뒤 하와이나 유럽으로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 급증하는 등, 나라 전체가 들뜬 시대였습니다.

헤이세이 불황 속의 생활

들떠 있던 국민들에게도 좋은 일은 영원하지 않았고, 1991년 버블이 붕괴했습니다. 버블 경제 붕괴와 함께 일본 경제는 거짓말처럼 악화되었고, '헤이세이 불황'이라고도 불리는 길고 긴 경제 침체가 시작되었습니다.

바로 그 무렵 '여유 교육(유토리 교육)'이 시작되었고, 이 시절 학생이었던 세대는 '여유 세대(유토리 세대)'라고 불립니다. 또한 취업 활동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 '슈퍼 취업 빙하기'를 맞으면서, 현재 35~45세 사이의 세대는 취업에 큰 어려움을 겪어야 했습니다.

이 시기에 채용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은 탓에, 현재 많은 기업들이 중장년층 인력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고 합니다.

1990년대 후반에는 아무로 나미에 붐을 필두로 코갈 패션, 갈색 머리, 루즈 삭스가 유행했습니다. Windows 95 출시로 개인용 컴퓨터가 폭발적으로 보급된 것도 이 무렵이며, 닌텐도의 슈퍼패미콤과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도 등장했습니다.

전화 접속(다이얼업)으로 인터넷에 연결했다가 전화요금에 깜짝 놀랐던 것도 지금은 좋은 추억이 되었습니다.

현재 일본의 생활

개인용 컴퓨터가 보편화되고 대부분의 일본인이 인터넷을 사용하게 된 것도 이 무렵부터지만, 최근에는 스마트폰으로 인터넷에 접속하는 사람의 비율이 더욱 높아지고 있습니다.

휴대전화를 한 대 이상 가진 사람이 흔해졌고, 인터넷 보급과 함께 유튜브 같은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에 빠지는 사람들이 속속 등장했습니다. 그와 함께 동영상을 올리는 사람들, 이른바 '유튜버'라 불리는 직업도 생겨났습니다.

의식주 역시 다양화되어, 다양한 문화를 접할 수 있는 글로벌 시대를 맞이했습니다. 이처럼 일본은 전후 직후 아무것도 없던 궁핍한 생활에서,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급성장을 거쳐 풍요로운 삶을 누리는 나라로 변모해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