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세기부터 17세기까지 이어진 대항해시대는 유럽 여러 나라가 새로운 항로를 개척하고 대규모 항해에 나선 시기로, 새로 발견한 땅을 식민지화하려는 목적도 함께 담고 있었습니다. 이 시대의 주역은 주로 스페인과 포르투갈이었으며, 그 파장은 먼 동아시아의 섬나라 일본까지 미치게 됩니다.
대항해시대의 시작
15세기에서 17세기에 걸쳐 유럽 각국은 아시아·아프리카·아메리카로 향하는 새로운 항로 개척에 나섰습니다. 이 모든 것은 스페인과 포르투갈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유럽에서 큰 수요를 자랑하던 아시아산 향신료를, 오스만 제국의 지배 아래 있지 않은 경로를 통해 직접 구매하려는 시도가 대항해시대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대항해시대의 세 가지 배경
- 오스만 제국의 부상
- 급증한 향신료 수요
- 나침반 기술의 발전
오스만 제국
13세기 말 이슬람 국가로 건국된 오스만 제국은 16세기 전성기를 맞아 서아시아·동유럽·북아프리카 삼대륙을 지배했습니다. 그 결과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요충지였던 지중해 무역은 오스만 이슬람 상인들의 손아귀에 들어갔고, 유럽으로 수입되는 상품에는 높은 관세가 부과되었습니다.
급증한 향신료 수요
같은 시기 유럽에서는 육식 문화가 확산되면서 향신료 수요가 크게 늘어났습니다. 주로 후추, 정향, 육두구 등이 고기의 양념과 장기 보존에 사용되었는데, 이 향신료들은 유럽 토종 작물이 아니어서 이슬람 상인들을 통해 높은 관세를 물고 구입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나침반 기술의 발전
중국(송나라)에서 발명된 나침반은 유럽에서 개량되어 한층 정교해졌습니다. 덕분에 배가 더 정확한 방향으로 항해할 수 있게 되었고, 종전에는 불가능했던 장거리 항해도 현실이 되었습니다.
유럽 열강이 개척한 항로
오스만 제국의 지배 아래 고가에 거래되던 향신료를 저렴하게 확보해 이윤을 남기고자 했던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개량된 나침반을 앞세우고 지중해 항로에서 벗어난 새로운 항해에 나섰습니다.
포르투갈의 항로 개척
대항해시대의 선구자로 유명한 인물은 항해왕자 엔히크(Prince Henry)입니다. 그는 주로 아프리카 서안의 금을 노리고 아프리카 서해안 항로를 개척했습니다.
엔히크 왕자 사후 포르투갈은 인도 항로 개척에 본격적으로 나섰습니다. 1488년, 바르톨로메우 디아스는 주앙 2세 국왕의 후원으로 아프리카 대륙 서해안을 따라 남하하여 희망봉에 도달했습니다. 이어 1498년에는 마누엘 1세 국왕의 후원을 받은 바스쿠 다 가마가 희망봉을 돌아 인도 서해안의 칼리컷에 도착하며 숙원이던 인도 항로를 마침내 열었습니다.
스페인의 항로 개척
반면 스페인은 포르투갈처럼 아프리카를 경유하는 대신 대서양 횡단을 통해 아시아로 가는 항로를 찾으려 했습니다.
1492년, 콜럼버스는 스페인 여왕 이사벨라의 후원을 받아 항해에 나서 서인도제도의 산살바도르에 도착했습니다. 그러나 이곳은 목표했던 인도가 아니라 당시 유럽인들이 전혀 알지 못하던 아메리카 대륙이었습니다. 콜럼버스는 자신이 도달한 땅이 인도라고 믿은 채 생을 마감했다고 전해집니다. 신대륙의 존재는 훗날 아메리고 베스푸치에 의해 공식적으로 확인되었습니다.
1519년, 마젤란은 스페인 국왕의 후원을 받아 정향과 육두구의 원산지로 '향료제도'라 불리던 말루쿠 제도(인도네시아)로 향하는 항로 개척에 나섰습니다. 스페인을 출발한 마젤란 함대는 남아메리카 최남단에서 마젤란 해협을 발견하고 유럽인으로서는 처음으로 태평양을 횡단했지만, 필리핀에 정박했을 때 현지 주민들과 충돌하여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의 부하들은 항해를 계속해 말루쿠 제도를 경유하여 1522년 스페인으로 귀환했으며, 이 항해는 인류 최초의 세계일주로 기록되었습니다.
대항해시대가 가져온 변화
경제 중심지의 이동 – 지중해에서 대서양 연안으로
동방 무역의 요충지로 번영했던 이탈리아 북부의 베네치아와 제노바는 쇠퇴했고, 유럽의 경제 중심은 스페인의 세비야, 포르투갈의 리스본 같은 대서양 연안 도시로 옮겨갔습니다. 이러한 세계 규모의 상업·무역 체계 변화를 상업혁명이라고 부릅니다.
화폐 가치 하락과 봉건 사회의 붕괴
아메리카를 식민지화한 스페인은 1545년 은광을 발견해 독점하고 막대한 양의 은을 본국으로 운반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유럽에서 은은 화폐로 사용되고 있었기 때문에 은의 대량 유입은 곧 화폐 가치 하락으로 이어졌습니다.
화폐 가치가 떨어지면 물가가 오르기 마련인데, 실제로 물가는 2~3배나 상승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를 가격혁명이라고 합니다. 화폐 가치 하락의 가장 큰 피해자는 귀족들이었습니다. 화폐 가치 하락은 곧 소득 감소와 같았고, 그 결과 귀족의 권력은 약화되었으며 유럽의 봉건 사회는 붕괴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아메리카산 식재료의 보급
감자, 토마토, 호박, 옥수수, 코코아, 고추, 땅콩, 담배 등 유럽에는 존재하지 않던 식재료들이 아메리카 대륙에서 들어왔습니다. 특히 옥수수는 콜럼버스가 스페인으로 가져가 재배한 뒤 인도, 중국, 아프리카, 동남아시아로 퍼져나갔습니다.
대항해시대가 일본에 미친 영향
대항해시대에 처음 일본에 도래한 유럽인은 포르투갈인이었습니다.
1543년, 포르투갈인이 탑승한 중국 선박이 다네가시마(種子島)에 표류해 닿으면서 이때 일본에 조총(화승총)의 기술이 전해졌습니다.
1549년에는 예수회 소속 선교사 프란치스코 하비에르가 아시아에서 기독교 선교 활동을 하던 중 일본에 상륙했습니다. 이후 기독교가 일본에 전파되면서 일본에는 없던 새로운 가치관과 사고방식이 유입되었습니다.
그 뒤 전국시대에는 포르투갈과 스페인 상인들이 일본과 남만무역(南蠻貿易)을 시작했습니다. 이를 통해 유럽에서 온 화약, 모직물, 안경, 컵, 거울 등의 물품과 함께 비드로(ビードロ)라 불리는 유리공예 제품들이 일본에 수입되었습니다.
이처럼 대항해시대는 전 세계적인 역사적 전환점이 된 시기로, 식문화와 생활양식에 이르기까지 지구 규모의 변화를 불러일으켰다고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