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의 역사

헤이조쿄를 중심으로 꽃핀 귀족 문화, 텐표 문화

※ 이미지는 예시이며, 가마쿠라 대불입니다.

율령 체제가 정비되며 중앙집권 국가로 나아가던 나라 시대에는 부와 권력이 헤이조쿄(平城京) 주변에 집중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귀족 문화가 크게 융성했습니다. 특히 쇼무 천황(聖武天皇)의 재위 시절에 개화한 이 시대의 문화는 연호에서 이름을 따온 텐표 문화(天平文化)라고 불립니다.

텐표 문화는 견당사(遣唐使)가 가져온 당나라의 문화를 폭넓게 수용했기 때문에 당 문화의 영향이 짙게 드러나는 것이 가장 큰 특징입니다.

고사기·일본서기 등 국사 편찬과 만엽집

율령제의 정비와 함께 일본인으로서의 국가 의식이 높아지면서, 왕권 통치의 근거와 국가 형성·발전의 과정을 보여주기 위한 국사 편찬 사업이 추진되었습니다.

일본 최초의 국사 편찬 사업은 덴무 천황(天武天皇) 때 시작되어, 그 결과물로 『고사기(古事記)』와 『일본서기(日本書紀)』가 완성되었습니다. 712년에 편찬된 『고사기』는 신화와 전설을 포함하여 신대(神代)부터 지토 천황(持統天皇)까지의 역사를 천황 중심으로 기술하고 있습니다.

720년에 완성된 『일본서기』는 중국 역사서의 형식을 본떠 한문으로 기술되었으며, 기록 내용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지만 고대사 연구의 귀중한 1차 사료로서 오늘날에도 활발히 연구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역사서들과 더불어 각 지역의 특산물, 땅의 유래와 전설 등을 기록한 지리서인 『풍토기(風土記)』가 713년에 편찬되었습니다. 힛타치(常陸)·이즈모(出雲)·하리마(播磨)·분고(豊後)·히젠(肥前) 다섯 나라의 풍토기가 조정에 제출되었으나, 그중 『이즈모노쿠니 후도키(出雲国風土記)』만이 거의 온전한 형태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위의 서적들을 편찬하고 해독하기 위해서는 귀족과 관리들이 한시(漢詩) 교육을 받는 것이 필수적이었는데, 그 결과물로 751년 오쓰 황자(大津皇子)·나가야 왕(長屋王) 등의 한시를 수록한 가장 오래된 한시집 『가이후소(懷風藻)』가 편찬되었습니다.

한편 천황부터 서민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계층이 읊은 고대 일본의 노래, 즉 와카(和歌) 약 4,500수를 수록한 『만엽집(萬葉集)』이 759년 무렵에 완성되었습니다. 만엽집에는 사람들의 순수한 감정이 솔직하게 담겨 있어 마음을 울리는 노래가 많습니다.

불교 국가의 성립

나라 시대의 불교는 국가의 보호 아래 크게 발전했습니다.

이 시대 천황들은 '진호국가(鎭護國家)'라는 사상 아래, 불교의 힘으로 국가의 발전과 통치를 도모하고자 했으며, 나라의 대사원(大寺)에서는 다양한 불교 이론이 연구되었습니다.

당시 승려들은 종교적 지도자일 뿐만 아니라 최신 문명을 갖춘 일류 지식인으로 인정받았습니다. 쇼무 천황의 신임을 얻어 정계에서 활약한 겐보(玄昉)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또한 여러 차례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일본행을 포기하지 않고 계율을 전한 당나라 승려 간진(鑑眞) 역시 일본 불교 발전에 크게 공헌한 인물입니다.

그러나 불교는 국가의 보호를 받는 동시에 엄격한 통제의 대상이기도 했습니다. 원칙적으로 승려의 활동은 사원 안에 머물러야 했지만, 훗날 대불 건립에 참여하게 되는 교기(行基)는 국가의 탄압을 피해 민중 속으로 들어가 포교 활동과 사회 사업에 적극적으로 힘썼고, 많은 백성들의 지지를 받았습니다.

이러한 진호국가 사상에 따라 쇼무 천황은 고쿠분지(國分寺) 건립과 대불(盧舎那仏) 조성이라는 대형 사업을 추진했지만, 이러한 정책은 국가 재정에 막대한 부담이 되었습니다.

한편 일본에 뿌리내리는 과정에서 불교는 현세의 이익을 구하는 수단이 되기도 했고, 전통적인 조상숭배 신앙과 결합하여 조상의 넋을 기리기 위해 불상을 만들고 경전을 필사하는 풍습이 생겨났습니다. 또한 불교의 정치화를 싫어하여 대사원을 떠나 수행에 전념하는 승려들도 등장했는데, 이들이 훗날 헤이안 불교의 모체가 됩니다.

텐표 문화의 미술

나라 시대에는 귀족과 사원의 풍요로운 생활, 그리고 불교의 발전에 힘입어 수많은 예술 작품이 탄생했습니다. 건축 분야에서는 사찰과 궁궐의 초석과 기와를 사용한 웅장한 건축물이 세워졌습니다. 대표적인 건축물로는 법륭사 몽전(夢殿), 도다이지 법화당(法華堂), 쇼소인(正倉院) 교고(校倉) 등이 있습니다.

조각 분야에서는 불상이 많이 만들어졌는데, 목조와 금동불을 비롯해 표현력이 풍부하고 조화로운 불상들이 유행했습니다. 이 외에도 나무로 골격을 만들고 흙으로 빚어 굳힌 소조(塑造)와, 옻칠을 반복해 형태를 완성하는 건칠(乾漆) 기법이 탄생했습니다.

회화 분야에서는 쇼소인에 전해지는 『조림미녀도(鳥毛立女屏風)』와 야쿠시지(薬師寺)에 전해지는 길상천상(吉祥天像)이 유명하며, 모두 당나라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공예품의 상당수는 쇼무 천황 사후 그의 유품인 의복, 가구, 악기, 갑옷 등 애장품들로, 쇼소인 보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처럼 텐표 문화와 불교 정치는 헤이조쿄를 중심으로 번영을 누렸지만, 불교 정치가 오히려 걸림돌이 되면서 국가 재정이 악화되었고, 고닌 천황(光仁天皇)과 간무 천황(桓武天皇)에 의한 정치 개혁이 시작됩니다.

그 일환으로 도읍을 옮기는 계획이 추진되는데…

이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 다루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