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의 역사

미나모토노 요리토모가 설치한 슈고와 지토란 무엇이었을까?

오늘날 가마쿠라 막부의 성립 연도는 미나모토노 요리토모가 쇼군에 임명된 1192년이 아니라, 슈고와 지토를 통해 전국의 토지 지배권을 장악한 1185년으로 보는 설이 유력하게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슈고와 지토는 가마쿠라 막부가 각지에 배치한 직책입니다. 이름은 자주 들어봤지만, 각각 어떤 역할을 맡았는지는 잘 알기 어렵습니다. 2022년 대하드라마 『가마쿠라전신 13인』에서도 어떤 식으로든 등장할 만큼 중요한 개념인 만큼, 이번 글에서는 누구나 이해하기 쉽게 정리해 보겠습니다.

슈고와 지토란?

슈고와 지토란 1185년 미나모토노 요리토모가 가마쿠라 막부를 열면서 각지에 설치한 직책을 가리킵니다. 슈고와 지토에 임명된 인물은 가마쿠라 막부에 복무하는 가신, 즉 요리토모와 주종 관계를 맺은 고케닌(御家人)들이었습니다.

슈고(守護)

슈고는 각 국(令制國)의 군사·경찰 업무를 담당했습니다. 한 국에 한 명씩 임명되었으며, 주된 역할은 해당 지역의 치안 유지와 전시에 국내 고케닌들을 지휘하는 것이었습니다.

겐페이 전쟁과 요시츠네 추토 과정에서 슈고는 소츠이부시(惣追捕使)로서 각국에서 반역자를 감시·체포하는 임무도 수행했습니다. 참고로 1185년 이후에는 국지토(國地頭)라고 불리기도 했다고 합니다.

지토(地頭)

지토는 슈고보다 더 현장 밀착형의 직책으로, 장원과 공령을 관리하고 연공(年貢)을 징수했습니다. 아울러 현지 주민들의 관리와 통제도 담당했습니다.

참고:

  • 장원(荘園): 권문세가가 소유한 사유지. 헤이안 시대 말기부터 섭관가나 천황 등 일부 강력한 세력만이 광대한 장원을 보유했습니다(기진지계 장원).
  • 공령(公領): 국가(조정)가 소유한 국유지. 국아령(國衙領)이라고도 부릅니다.

이처럼 지토는 장원 관리, 공령의 세금 징수, 군사·경찰 권한 등 폭넓은 권한을 지녔기 때문에 현장에서 압도적인 권력을 행사했습니다. 즉 '지토에 임명됨' ≒ '장원·공령의 지배자가 됨'인 셈입니다. 다만 지토 임명은 쇼군이 고케닌에게 은혜를 갚는 은상의 하나로 이루어졌습니다.

한편 슈고의 직무 중에는 삼대 범과(三大犯課)라고 불리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 오반야쿠(大番役): 조정의 경비 업무를 수행하는 교토 대번.
  • 모반인 검속: 막부나 조정에 반역한 자를 체포하는 일.
  • 살인범 검속: 살인자를 체포하는 일.

울던 아이도 지토에게는 못 당한다

지토에 임명된 것은 가마쿠라 막부에서 활약한 무력 있는 무사들이었습니다. 이들 지토 가운데 많은 이가 실력으로 현지 주민을 다스렸고, 백성들은 그들을 크게 두려워했습니다.

유명한 속담 '울던 아이도 지토에게는 못 당한다'는, 억합적인 상대에게는 묵묵히 순응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로, 백성들이 지토를 두려워했던 실상이 속담의 형태로 남은 것입니다. 폭력으로 일을 해결하려 드는 지토와 맞서 싸워도 이길 가능성이 없었기에, 백성들은 억울한 일이 있어도 조용히 따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슈고·지토 설치의 목적과 배경

1185년, 겐지가 다이라씨를 멸망시킨 단노우라 전투 이후, 미나모토노 요리토모는 반역자인 동생 요시츠네를 추토하기 위해 전국에 슈고와 지토를 설치할 것을 고시라카와 법황에게 허락받았습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명분에 불과했고, 요리토모의 진짜 의도는 가마쿠라 막부에 복무하는 고케닌들을 전국 각지에 배치하여 막부의 지배력을 전국으로 확장하는 데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그렇다면 설치에 이르기까지의 흐름과 배경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설치의 배경 — 다이라씨의 멸망

가마쿠라 막부가 열리기 전, 먼저 정치를 장악한 것은 다이라노 기요모리였습니다. 기요모리는 다이조다이진(太政大臣)이라 불리는 조정 최고위 관직에 오른 최초의 무사였습니다.

1179년, 기요모리는 원정(院政)을 주도하던 고시라카와를 유폐시키고 권력을 장악했습니다. 귀족들은 조정에서 권력을 휘두르는 기요모리의 횡포에 불만과 반감을 품게 됩니다. 한편 기요모리는 일손 무역으로 얻은 경제력과 조정 내 권력을 바탕으로 점차 귀족화되어 갔습니다.

그러다 1180년, 고시라카와 법황의 아들 모치히토 왕(以仁王)의 명에 따라 '다이라 타도'가 거론되었고, 가마쿠라를 거점으로 하는 미나모토노 요리토모를 비롯한 전국의 겐지들이 거병했습니다. 이것이 5년간 이어진 전국적 내란, 겐페이 전쟁입니다.

이 전쟁에서 다이라씨는 1184년 이치노타니 전투, 1185년 야시마 전투, 그리고 단노우라 전투에서 연달아 패배하며 멸망의 길을 걷게 됩니다.

요시츠네 추토가 낳은 슈고·지토

1185년 다이라씨가 몰락하자, 고시라카와 법황은 요리토모의 세력을 두려워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미나모토노 요시츠네를 조정으로 끌어들여 요리토모 토벌을 명령합니다.

그러나 요시츠네는 실패했고, 오히려 요리토모의 반격이 두려워진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법황의 행동에 분노한 요리토모는 곧바로 교토로 올라가 법황에게 직접 '요시츠네 추토'의 명을 받아냈습니다. 이로써 요리토모는 동생을 토벌할 명분을 확보했습니다.

나아가 다이라씨 토멸과 요시츠네 문제로 조정에 공을 세운 요리토모는, 법황으로부터 슈고와 지토의 설치 및 임명권을 허락받는 데 성공합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요리토모의 가신인 고케닌들이 전국에 슈고·지토로 파견될 수 있게 되었고, 무사에 의한 정치인 가마쿠라 막부의 시작이 열렸습니다. 바로 1185년의 일이었습니다.

슈고·지토가 처음 설치된 가마쿠라 막부 초기

가마쿠라 막부는 슈고와 지토를 설치했지만, 701년 대보률령(大寶律令) 이래 오랫동안 권력을 쥐어온 조정 세력이 여전히 강했기 때문에, 초기 막부의 지배력은 서일본까지는 미치지 못했습니다.

또한 조정은 각국에 국사(國司)를 파견해 통치했기 때문에 막부의 슈고와 이중 지배 구조가 형성되어 충돌이 잦았습니다. 이후 무로마치 막부 시대에는 슈고가 국내 무사들을 가신으로 삼으며 권력을 강화해, 한 나라를 다스리는 슈고 다이묘로 성장하게 됩니다.

같은 현상이 장원과 영지에서도 벌어졌습니다. 조정이 파견한 장원 관리자인 장관(莊官)과 향사(鄕司)가 지토와 대립하며 이중 지배의 마찰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러한 이중 지배의 충돌은 1221년 조큐의 난 이후 가마쿠라 막부의 권력이 급상승하면서 확대되었고, 지토는 막부의 권위를 등에 업고 장원을 잠식하기 시작했습니다.

슈고와 지토 정리

슈고와 지토는 1185년, 미나모토노 요리토모가 요시츠네 추토를 명분으로 고시라카와 법황의 허가를 받아 설치한 것이며, 이 해를 가마쿠라 막부의 성립으로 보는 견해가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1. 슈고는 각국의 군사·경찰 업무를 담당했습니다.
  2. 지토는 장원·공령의 관리와 연공 징수를 담당했습니다.
  3. 슈고·지토에 임명된 자는 가마쿠라 막부에 복무하는 고케닌이었습니다.
  4. 슈고의 직무는 대번, 모반인 검속, 살인범 검속의 삼대 범과로 구성되었습니다.
  5. 가마쿠라 초기에는 조정의 권력이 아직 강해 서일본까지 지배가 미치지 못했습니다.
  6. 조정 역시 국사, 장관, 향사를 파견했기 때문에 가마쿠라 막부와의 이중 지배가 발생했습니다.
  7. 조큐의 난 이후 조정이 막부에 패배하면서, 가마쿠라 막부의 지배력은 서일본까지 확대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