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경제에서는 호황과 불황이 반복됩니다. 이를 '경기 변동'이라고 부르는데요, 즉 불황은 언제든 찾아올 수 있으며, 일본은 그동안 여러 차례 불황을 겪어왔습니다.
그중에서도 1991년(헤이세이 3년)부터 2002년(헤이세이 14년)까지 이어진 장기 불황, 이른바 '헤이세이 불황'은 많은 사람들에게 생생한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헤이세이 불황은 지금까지의 불황과는 성격이 매우 달랐습니다. 원래 경기 순환에 따라 찾아오는 불황에 버블 붕괴라는 악재까지 겹치면서 발생한 새로운 유형의 불황이었죠. 일본은 이런 유형의 불황을 경험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정부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고, 불황은 더욱 길어졌습니다.
이처럼 경기 순환에 따른 불황 + 버블 붕괴가 겹친 형태였기 때문에 헤이세이 불황은 '복합 불황'이라고도 불립니다.
이번 글에서는 '잃어버린 10년'이라고도 불리는 헤이세이 불황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헤이세이 불황은 왜 발생했을까?
헤이세이 불황의 직접적인 원인은 과열된 버블 경기를 진정시키기 위해 정부가 단행한 긴축 정책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버블 경제란 무엇일까요?
쇼와 말기부터 헤이세이 초기에 걸쳐 호황이 이어지면서 부동산 가격과 주가가 실물 경제를 크게 웃돌며 폭등했습니다. 당시 일본은 땅값만으로 세계 최고 수준의 부자 나라가 되었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급등했던 부동산 가격과 주가는 순식간에 추락하기 시작합니다. 1990년 전후로 폭락하면서 부동산과 주식에 투자했던 개인과 기업들은 막대한 손실을 입게 됩니다.
특히 큰 타격을 입은 곳이 바로 은행이었습니다.
1990년 3월, 일본 정부는 호황기에 대출을 늘려온 은행들에게 "지금과 같은 비정상적인 부동산 가격 상승은 은행들이 부동산 구매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대출해준 데서 비롯된다"고 통보했습니다.
쉽게 말해 "수익이 난다고 무작정 대출을 늘리면 안 되지 않느냐"는 것이죠. 부동산 가격을 적정 수준으로 되돌리기 위해 정부는 부동산 관련 대출 규제에 나섰고, 여기에 공식 할인율 인상, 지가세 신설 등 과열된 경기를 식히기 위한 정책들을 연달아 시행했습니다.
그 결과 과열되었던 버블 경기는 멈출 수 있었지만, 주가와 부동산 가격의 폭락을 초래하면서 버블 붕괴의 스위치를 누르고 말았습니다.
닛케이 평균 주가는 1990년 10월 고점의 절반 수준으로 곤두박질쳤고, 부동산 가격도 1992년 정점을 찍은 뒤 급락했습니다. 실물 경제 역시 1991년부터 후퇴하면서 헤이세이 불황이 시작된 것입니다.
헤이세이 불황 때는 무슨 일이 있었나?
헤이세이 불황 기간에 일어난 주요 사건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 은행·증권사 파산
- 은행의 대출 축소(크레딧 크런치)
- 구조조정과 감봉
- 소비 위축
은행 파산
버블 붕괴로 수많은 기업들의 경영이 악화되면서 은행에서 빌린 돈을 갚지 못하는 회사가 속출했습니다. 대금을 회수하지 못한 은행들은 연쇄적으로 경영난에 빠졌습니다.
이런 사태에 대비해 은행들은 기업이 보유한 부동산을 담보로 잡아두었지만, 헤이세이 불황에서는 이 담보가 제 역할을 하지 못했습니다.
은행들은 버블 경제로 폭등하던 시기의 부동산 가격을 참고해 담보 가치를 산정했기 때문에, 토지를 압류해 매각하더라도 대출금을 회수할 수 없었고, 많은 은행이 손실을 입었습니다.
은행 경영은 계속 악화되었고, 마침내 1998년 홋카이도 척식은행이 파산했습니다. 은행이 파산하자 해당 은행에서 대출을 받던 기업들도 자금 조달이 끊겨 경영 위기에 몰렸습니다.
그래서 홋카이도 척식은행의 파산은 특히 홋카이도 지역 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안겨주었습니다.
증권사 파산
1997년에는 주가 폭락으로 큰 타격을 입은 대형 증권사 야마이치 증권이 영업을 중단했습니다.
야마이치 증권은 주가 폭락으로 손실을 본 고객이 떠나지 않도록, 회사가 고객의 손실을 대신 보전하고 이를 부정회계로 은폐해 왔습니다.
주가가 다시 오르면 손실을 만회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겠지만, 버블 시기의 주가로 돌아오지 않으면서 부정회계가 반복될수록 손실은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결국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입니다.
홋카이도 척식은행과 야마이치 증권의 파산·폐업은 국민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은행의 대출 축소(크레딧 크런치)
파산을 피한 남은 은행들 역시 경영난에 시달렸고, 정부의 지원을 받으며 간신히 명맥을 유지했습니다.
버블 경제 시기에는 활발하게 이루어지던 대출이 헤이세이 불황에 들어서면서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대출 심사 기준이 엄격해지고 은행들은 돈을 빌려주기를 꺼리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크레딧 크런치' 때문에 재무 상태가 건전한 기업조차 대출을 받지 못해 경영이 어려워지는 곳이 많았습니다. 특히 중소기업에 대한 대출 축소가 두드러져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구조조정과 감봉
은행의 대출 축소로 경영이 악화된 기업들은 경영 방침을 재검토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수익성이 낮은 사업을 정리하고 비용을 삭감하며, 초과 인원을 해고하는 구조조정 움직임이 활발해졌습니다.
1990년 2.1%였던 실업률은 계속 상승해 2002년에는 5.4%를 기록하며 두 배 이상 늘었습니다.
구조조정을 피한 사람들도 감봉의 영향을 받았고, 기업들은 신입 채용을 줄이거나 포기했습니다.
1993년부터 2005년 사이에 학교를 졸업한 세대는 헤이세이 불황의 여파로 정규직 취업에 실패한 경우가 많았는데, 이 세대를 '취업 빙하기 세대'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소비 위축
구조조정, 감봉, 취업난 같은 악재는 사람들의 소비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버블 시절처럼 화려한 소비는 줄어들고, 저가 할인점이 인기를 끌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에 1997년의 소비세 인상과 아시아 통화 위기까지 겹치면서 소비는 더욱 식었고, 물가 하락, 즉 디플레이션(디플레)으로 이어졌습니다.
디플레이션이 계속되면 기업은 물건이 팔리지 않아 감봉과 구조조정이 가속화되고, 그러면 소비가 더 위축되는 '디플레이션 스파이럴'이 반복되며 헤이세이 불황의 장기화에 한몫했습니다.
헤이세이 불황의 끝, 그리고 그 이후의 일본 경제
일본 경제는 2002년경부터 0% 안팎에 머물던 GDP 성장률이 1~2% 선으로 안정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로써 2002년 헤이세이 불황은 막을 내리고, 2002년부터 2008년까지는 '이자나미 경기'라 불리는 호황국면이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GDP 성장률 1~2%는 완전한 회복이라고 보기 어려웠고, 국민 소비도 여전히 저조했습니다. 또한 호황국면이었음에도 노동자의 임금은 늘지 않았기 때문에 대부분의 국민은 경기가 좋다는 실감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호황을 실감하지 못한 채 2008년 미국에서 리먼 쇼크가 발생하면서 이자나미 경기는 막을 내리고, 일본은 다시 불황에 빠집니다.
이번 호황이 실감나지 않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1991년 버블 붕괴부터 리먼 쇼크를 거쳐 2012년 경제 회복까지의 약 20년을 하나의 불황으로 보고 있으며, 이를 '잃어버린 20년'이라고도 부릅니다.
일본은 헤이세이 불황에서 벗어났지만, 버블 경제 시절의 밝은 분위기는 찾아오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일본에서는 소득 격차 확대와 저출산·고령화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정부는 지금도 디플레이션 극복과 저성장 개선을 위해 다양한 정책을 펼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