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의 역사

사이먼 위원회 보이콧 운동 – 배경, 전개 과정과 역사적 의미

1928년 인도를 방문한 사이먼 위원회(Simon Commission)는 인도 헌법 발전을 검토하기 위해 파견된 영국 조사단이었지만, 구성원 전원이 백인 영국인이라는 점이 인도 각계의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결국 이 위원회는 인도 역사상 가장 광범위한 보이콧 운동 중 하나의 대상이 되었는데, 이번 글에서는 사이먼 위원회 보이콧의 배경과 전개 과정, 그리고 역사적 의미까지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사이먼 위원회란 무엇인가?

사이먼 위원회는 1927년 11월 영국 보수당 정부가 구성한 '인도 헌법 위원회'로, 몽태규-첼름스퍼드 개혁(몽포드 개혁) 이후 인도 통치의 진전 상황을 조사하고 향후 헌법적 발전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위원장은 존 사이먼 경(Sir John Simon)이 맡았으며, 위원 7명은 모두 영국 의회 의원으로만 채워져 있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인도인 단 한 명도 위원회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인도의 미래를 결정할 헌법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정작 인도인이 배제된 것은 당시 인도 사회에 깊은 모욕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보이콧 결정의 배경

인도 국민회의를 비롯한 주요 정당들은 1927년 마드라스 회의에서 위원회 보이콧을 공식 결정했고, "사이먼 위원회, 돌아가라(Simon Go Back)"라는 구호가 전국으로 빠르게 확산되었습니다. 무슬림 연맹 내부에서도 진나파가 보이콧에 동참하는 등, 종교와 정파를 넘어선 전민족적 항외 여론이 형성되었습니다.

비하르에서의 저항 운동

비하르주에서는 아누그라 나라얀 신하(Anugrah Narayan Sinha)의 주도 아래 전(全)정당 회의가 개최되었고, 이 회의에서는 청년들을 조직적으로 동원하여 사이먼 위원회 보이콧 시위를 벌이기로 하는 계획이 세워졌습니다.

위원회가 1928년 12월 12일 파트나에, 같은 달 24일 란치에 도착했을 때는 격렬한 항의 시위가 벌어졌습니다. 시위대는 흑기를 게양하고 위원회를 규탄했으며, 위원회는 도처에서 거센 저항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습니다.

보이콧 운동의 역사적 의미

사이먼 위원회 보이콧은 인도인의 정치적 자결권을 요구하며 온 인도가 하나로 뭉친 드문 사례라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닙니다. 특히 1928년 10월 라호르 시위에서 지도자 랄라 라즈파트 라이가 경찰의 폭력 진압으로 부상을 입고 그해 11월 세상을 떠난 일은 운동의 상징적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위원회는 결국 1930년 보고서를 발간했고, 이는 1935년 인도 통치법(Government of India Act 1935)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또한 인도인 대표를 배제한 데 따른 비판에 직면한 영국은 원탁회의를 통해 인도 지도자들과 협의하는 절차를 마련해야 했습니다. 즉, 사이먼 위원회 보이콧은 인도 독립운동이 더욱 강력하고 통합된 흐름으로 발전하는 계기가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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