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의 역사

막부의 감시를 뚫고 가가 백만 석을 지켜낸 제2대 번주 마에다 도시쓰네

에도 막부 시대, 가가 번(加賀藩)은 외양 대명(外様大名)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어삼경(御三家)에 필적하는 후대한 대우를 받았습니다. 막부가 '일국 일성령(一国一城令)'을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한 국가에 두 개의 성을 인정받는 특례를 누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후대는 막부 창설 초기부터 주어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초기에는 막부의 예리한 감시망이 가가 번에 쏠려 있었는데, 이 위기를 넘긴 장본인이 바로 제2대 번주 마에다 도시쓰네(前田利常)였습니다.

마에다 도시쓰네, 양자로 들어간 가문 계승

도시쓰네는 마에다 도시이에(前田利家)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지만, 어머니가 첩이었던 탓에 마에다 나가타네(前田長種)의 집에서 자랐습니다. 그래서 도시쓰네는 아버지 도시이에가 세상을 떠나기 직전인 1598년에야 비로소 친아버지와 처음 만났다고 전해집니다.

세키가하라 전투 이후 에도에 막부가 들어서고 막번 체제가 확립되면서, 가가 마에다 가문은 도시이에의 장남 마에다 도시나가(前田利長)를 초대 번주로 맞이했습니다. 그러나 도시나가에게는 후사가 될 아들이 없었고, 결국 도시쓰네가 양자로 들어가 가문을 계승하게 됩니다. 더욱이 도시쓰네는 쇼군 히데타다 도쿠가와의 딸 다마히메(珠姫)를 정실로 맞아들이며 쇼군 가문과의 혈연 관계를 한층 강화했습니다.

막부의 감시에 놓인 가가 번의 위기

마에다 가문은 쇼군 가문의 딸을 정실로 맞았지만, 여전히 외양 대명이자 120만 석에 달하는 대영주였기 때문에 언제나 막부의 예의 주시를 받아야 했습니다.

1631년, 도시쓰네의 거성인 가나자와 성에 큰불이 나 수리 공사를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이 소식을 접한 막부는 "가가 번이 반란을 획책하기 위해 성을 굳건히 다지고 있는 것 아니냐"며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습니다.

이것이 바로 간에이의 위기(寛永の危機)입니다. 가가 번 역사상 최대의 위기로 불리는 이 사건에서 번주 도시쓰네는 직접 에도로 가 해명에 나섰고, 가신들도 발벗고 나서 수습에 힘썼습니다. 그러나 도시쓰네는 이 사건을 통해 가가 번이 끊임없이 막부의 감시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바보' 행세의 시작

이 사건 이후 도시쓰네는 기묘한 행동을 하기 시작합니다. 에도 저택에 틀어박혀 놀기만 하는 것입니다. 요컨대 '우츠케(うつけ),바보' 행세를 한 것입니다.

주군다운 위엄은 고사하고, 콧털을 그대로 방치하는 등 거동이 몹시 무례했다고 합니다. 도시쓰네의 품위 없는 모습을 지켜본 측근들은 콧털 정리 도구를 드리며 충고했지만, 도시쓰네는 끝내 콧털을 정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침내 콧털 정리 도구를 올릴 때가 되자 도시쓰네는 무겁게 입을 열었습니다.

"내가 콧털이 나 있다고 바보 취급을 받는다는 것도, 여러분이 내 콧털을 정리하려 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허나 이 콧털은 가가 백만 석을 지키고, 너희들이 평안하게 살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마에다 가문의 전통인 '우츠케'입니다. 일부러 바보인 척하며 막부의 감시망을 흩어 버리는, 도시쓰네의 필사적인 처세술이었던 것입니다.

도시쓰네의 엉뚱한 행동들

도시쓰네의 실례는 극에 달했습니다. 병을 핑계로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거나, 하카마 자락을 걷어 올리고 다리를 드러낸 채 "여기가 아픈 건 아닌가?"라고 둘러댔으며, 에도 성에서 "소변 금지, 벌금"이라는 게시를 발견하자마자 일부러 오줌을 누는 등 제멋대로 행동했습니다.

이런 행동에 대한 그의 변명은 "벌금이 아깝다고 대명이 오줌까지 참겠느냐!"였다고 전해집니다.

과연 막부 입장에서도 이런 무법자에게는 손을 쓸 수 없었습니다. 그야말로 도시쓰네가 노린 바였습니다.

참고로 도시이에의 사촌 동생인 마에다 게이지(前田慶次) 역시 카부키모노로 유명했듯이, 마에다 가문은 원래부터 기인답고 파란만장한 일화가 끊이지 않던 가문이었습니다.

50년에 걸친 번정 개혁과 문화 육성

이처럼 엉뚱한 행동으로 겉면의 경계심을 무마한 도시쓰네였지만, 그 이면에서는 약 50년에 걸쳐 번정 개혁에 매진했습니다. 검지(検地)를 통한 재정 기반 확립과 신전 개발, 각종 산업 진흥을 추진했고, 공예와 예능 등 전통 문화의 보호와 육성에도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이러한 노력은 훗날 '가가 백만 석'이라 불리는 가가 번의 부강함과 독특한 문화의 초석이 되었습니다. 겉으로는 바보 행세를 하며 막부의 눈을 피하고, 속으로는 번의 발전에 일관된 도시쓰네의 처세술은 오늘날까지 회자되는 일화로 남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