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의 역사

오늘날에도 통할 일본 역사 속 매력적인 미남 인물들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훈훈한 남자들...

긴 일본의 역사 속에도 오늘날까지 회자되는 인기 에피소드를 지닌 인물들이 많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역사 속 미남 인물들을 소개해 보겠습니다.

사카모토 료마(1836~1867)

역사 교과서에서 익숙한 사카모토 료마. 하지만 앞으로의 역사 교과서에는 등장하지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막말의 영웅 사카모토 료마의 유명한 사진을 보면 마른 체형에 선 자세가 단정해 인상이 좋습니다.

당시 그는 남녀 모두에게 사랑받는 성격이었고, 약혼 이야기가 나올 정도의 연인도 있었으며 일본 각지의 여성들과 폭넓게 교류했습니다.

그렇게 인기 많은 료마를 사로잡은 여성은 '오료(お龍)'라는 여성으로, 료마가 교토의 데라다야에서 습격당해 부상을 입었을 때부터 함께 행동하기 시작했습니다. 결혼 후 오료와 함께 사쓰마로 신혼여행을 떠난 일화는 일본 최초의 신혼여행으로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히지카타 도시조(1835~1869)

료마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히지카타 도시조는 신선조의 '귀신 부장'으로 불렸지만, 교토 하나마치(유곽)의 여성들에게 수많은 러브레터를 받을 만큼 인기 많은 남자였습니다.

17세 무렵에는 일하던 가게의 여점원과 관계를 맺었다가 주인의 반감을 사 가게를 그만두기도 했습니다. 신선조는 교토 시민들에게 미움받았지만, 히지카타만은 예외였습니다.

생전 처음으로 많은 인기를 얻자 본인도 "이건 내 본분이 아니다"라고 주변에 말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인기가 많았던 히지카타였지만 결혼하지 않았고 첩도 두지 않았습니다. 반면 국장(局長) 곤도 이사미는 결혼했을 뿐 아니라 여러 첩을 두었습니다.

히지카타와 곤도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현대에도 마찬가지겠지만, "연인으로서는 훌륭해도 남편으로서는..."이라는 평가였을지도 모릅니다. 흔히 남편과 연인은 다른 유형이라는 말이 있듯이 말입니다.

가쓰 가이슈(1823~1899)

'에도성 무혈 개성'의 실현을 주도한 막부의 관료였습니다.

서양식 무술을 익힌 뒤 난학과 군법의 숙을 열 정도로 문무를 겸비한 인물이었으며, 일본 해군의 기초를 닦은 사람이기도 합니다.

사진을 보면 깊은 눈매에 산뜻한 인상의 훈남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생활에서도 아내 외에 여러 첩을 두었고, 하녀와 첩에게 자식을 낳게 했을 뿐 아니라 아내와 첩을 한집에 살게 했습니다. 과연 아내는 자신의 무덤을 첩 곁에 함께 해달라고 탄원했다고 합니다...

도쿠가와 요시노부(1837~1913)

에도 막부의 마지막 15대 쇼군으로 재위는 단 1년이었지만, 대정봉환의 집행 등 역사 교과서에 빠질 수 없는 장군입니다. 막부 붕괴 후 메이지 시대를 거쳐 다이쇼 2년(1913년)까지 살았으니, 아주 최근까지 살아 있었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장수했습니다.

이 사진은 에도 시대가 끝난 뒤 찍은 것이라 늙어 보이지만, 젊은 시절에는 품위 있고 여유로운 분위기를 풍기는 외모였으며 잘생겼다는 소리를 들었다고 합니다.

막부에서 물러난 뒤에는 1902년 후작에 서임될 만큼 공적을 인정받았고, 귀족원 의원으로 35년 만에 정계에 복귀하기도 했습니다.

폭넓은 취미를 지녔던 그는 권력에서 물러난 뒤 오히려 더 충실한 삶을 보냈다고 합니다. 사진 촬영으로 유명했을 뿐 아니라, 30년 넘게 머문 슨푸(현 시즈오카)에서는 자전거 타기도 즐겼습니다.

도고 헤이하치로(1847~1934)

사진에서 세련된 멋스러움이 느껴지는 도고 헤이하치로는 러일전쟁 당시 연합함대 사령장관으로서 '최강'이라 불리던 러시아 발트 함대를 격파하며 국민적 스타가 되었습니다.

러일전쟁 이후에는 동궁학문소(東宮學問所) 소장으로서 쇼와 천황의 교육에도 관여했습니다.

젊은 시절 사진을 찾아보면 지적인 훈남이었던 것으로 보이며, 1926년에는 미국 TIME 잡지 표지에 일본인 최초로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외모 덕분에 젊은 시절부터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았던 것으로 보이지만, 아내를 무척 사랑하는 사람이었고 아내의 요양을 위해 이토에 별장을 지어주는 등 부부 사이가 돈독했다고 전해집니다.

사진 없는 시대의 미남 에피소드

전국시대의 무장 중 일부는 사진이 남아 있지 않아도 미남으로 불립니다.

사나다 유키무라는 미남으로 자주 언급되는 무장 중 한 명입니다.

오사카 여름의 진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한 걸음 몰아붙이다 장렬히 전사한 에피소드는 비극의 영웅으로서 이야깃거리가 됩니다.

하지만 초상화와 사료를 바탕으로 실제 외모를 추측해 보면 키가 140cm 정도로 작고 이빨도 빠져 있어, 게임이나 드라마 속 이미지와는 완전히 다릅니다. 사나다 유키무라가 미남으로 기록된 것은 오사카의 진에서 분전한 공적에 더해, 도쿠가와의 회유를 거절할 만큼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대한 은혜를 소중히 여기던 인정 많은 인물이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나다 유키무라뿐 아니라 미남 에피소드가 퍼져 나간 배경에는 주군을 더 멋지게 보이고 싶은 가신들의 마음과 신격화된 일화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에게 공통적으로는 "더 멋지게 이야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인간적 매력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마음에 드는 역사 인물을 발견했다면, 드라마·소설·게임 등에서 어떻게 그려지는지 비교해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입니다. 직접 자료를 읽고 관련 유적지를 찾아가며 깊이 알아가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