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나미 게이스케(山南敬助)는 신선조에서 '총장'이라는 중책을 맡았던 인물입니다. 국장 곤도 이사미(近藤勇), 부국장 히지카타 도시조(土方歳三)에 이어 조직을 이끌던 실질적인 3인방 중 한 명이었죠.
예전에는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지만, 최근 들어 그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그 배경에는 온화한 인품을 짐작하게 만드는 애틋하고 구슬픈 일화가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부터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신선조 결성 전까지의 야마나미
![[신선조 총장 야마나미 게이스케] 탈출, 할복! 그리고 격자 너머로 나눈 마지막 작별 인사](https://www.historyback.com/article/uploadfiles/202207/2022072209250146.jpg)
1833년, 센다이 번에서 태어났다고 전해집니다. 이후 센다이를 떠나 에도로 향했습니다.
에도에서는 오노파 잇토류(小野派一刀流)와 호쿠신 잇토류(北辰一刀流) 등 여러 유파의 검술을 익혔습니다. 호쿠신 잇토류라면 사카모토 료마(坂本龍馬)와 같은 유파이기도 합니다.
그러던 중 곤도 이사미가 가르치던 텐넨 리신류(天然理心流)와의 이유파 대련에서 패배하고, 그 과정에서 곤도의 인품에 매료되어 그와 함께하게 됩니다.
막부 로시구미(浪士組)가 결성되자 곤도와 함께 교토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후에 교토의 치안을 지키기 위한 조직 '신선조'가 탄생합니다.
신선조 탈출!
신선조 결성 초기에는 부국장 히지카타와 함께 활약했습니다. 또 다른 국장이었던 세리자와 카모(芹沢鴨)의 숙청에도 관여했습니다.
하지만 신선조의 이름을 천하에 알린 '이케다야 사건'에는 참여하지 못했습니다. 병이나 부상의 영향 때문이었다고도 합니다.
무렵부터는 오랜 벗이었던 히지카타와 생각의 차이가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한 것으로 보입니다. 조직이 커질수록 수뇌부가 나아갈 방향이 달라졌죠. 새로운 기풍을 받아들이느냐, 기존의 방식을 고수하느냐—어느 쪽이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옛날이 좋았다"는 말을 자주 입에 담았다고 전해집니다.
게다가 새로 입단한 이토 카시타로(伊東甲子太郎)가 야마나미보다 위인 '참모' 자리에 올랐습니다. 신선조 내에서 야마나미의 입지는 점점 좁아져 갑니다.
한편 히지카타는 대원들의 규율을 유지하기 위해 '국중법도(局中法度)'를 제정했습니다. 그 안에는 "대열을 이탈하는 자는 할복형에 처한다"는 조항이 있었습니다. 그동안 이 법을 어긴 대원들은 줄곧 엄벌에 처해왔습니다.
에도 시절부터 오랫동안 함께해 온 야마나미가, 신선조가 본격적으로 활약하기도 전에 스스로 그 법을 짊어지는 날이 다가오게 됩니다.
마지막 날, 격자 너머의 작별 인사
![[신선조 총장 야마나미 게이스케] 탈출, 할복! 그리고 격자 너머로 나눈 마지막 작별 인사](https://www.historyback.com/article/uploadfiles/202207/2022072209250168.jpg)
1865년 2월, "에도로 간다"는 편지를 남긴 채, 신선조 총장 야마나미 게이스케가 탈출합니다.
신선조 내부는 발칵 뒤집힙니다. 총장의 도주를 용서할 수 없다는 목소리가 나오는가 하면, 여기서 특별한 조처를 하면 조직이 흔들릴 것이라는 우려도 있었죠.
추격을 맡은 것은 1번대 대장 오기타 소지(沖田総司)였습니다. 국장 곤도는 "반드시 야마나미를 데려와라!"라고 명령하며, 덧붙여 "하지만 찾지 못하겠으면 어쩔 수 없으니 포기하고 돌아오거라."라고 말했습니다.
오기ita 단 한 사람에게 명령을 맡긴 데에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오기타 역시 에도 시절부터 함께 땀을 흘려 온 사람이었고, 무엇보다 야마나미를 형처럼 따랐기 때문입니다. 오기타는 야마나미가 무사히 도망치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소망은 헛된 것이 되고, 야마나미는 오기ita에게 쉽게 붙잡힙니다. 스스로 모습을 드러냈다는 설도 전해집니다.
"어째서 돌아온 거냐…"
오랜 인연을 지닌 사람은 다시금 도망치라고 권했지만, 야마나미는 이미 죽음을 받아들인 듯 고개를 흔들지 않았습니다.
전날 밤, 야마나미는 사랑하는 연인 아케사토(明里)와 격자(格子) 너머로 마지막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고 전해집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모두에게 감사를 전한 뒤 할복했습니다. 개수(介錯)는 오기타 소지가 맡았습니다. 향년 33세였습니다.
어째서 탈출해야만 했을까?
야마나미는 존왕양이(尊王攘夷) 사상을 지닌 인물이었습니다. 존왕양이란 "천황을 존경하고 외적을 물리치자!"는 사상입니다.
반면 곤도와 히지카타는 "무사가 되겠다!"는 한결같은 소망만으로 나아가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대원들 역시 같은 마음이었죠. 당시 농민 출신이 무사가 될 수 있는 길은 신선조에 몸을 맡기는 것뿐이었으니까요.
신선조가 존왕양이를 내건 지사들과 싸우게 되면서, 야마나미는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회의를 느꼈을지도 모릅니다.
신선조 대원 수가 늘면서 본거지를 니시 홍안사(西本願寺)로 옮기게 되는데, 니시 홍안사는 존왕양이 색채가 강한 장소였습니다. 곤도 일행은 본거지를 옮김으로써 반발의 싹을 미리 잘라내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합니다. 야마나미는 당연히 이에 반대했지만, 곤도 일행은 그의 의견에 귀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이 사건이 두 사람 사이의 불화로 이어졌다고 전해집니다.
후에 입단한 이토 카시타로 역시 야마나미와 마찬가지로 호쿠신 잇토류 출신이며 존왕양이 사상의 소유자였습니다. 이 인물 역시 방향성의 차이로 대열을 떠나게 됩니다. 몰래 탈출한 것이 아니라 몇몇 대원들을 이끌고 '탈퇴'라는 이름을 걸고 나간 것이었죠.
그 후 그는 신선조에 의해 암살당합니다. 신선조와 이토 파벌 사이의 균열은 훗날 곤도의 처형에도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정리
시대의 흐름에 몸을 맡기는 사람이 옳은가, 아니면 자신의 신념을 끝까지 고수하는 사람이 옳은가. 그러나 신념만큼은 변함이 없습니다.
그날 밤, 야마나미와 아케사토는 어떤 말을 주고받았을까요?
"저리 나와서 나랑 함께 도망치자!"
"당신 마음 믿고 있어요. 무슨 일이 있어도 언제나 곁에 있을게요…"
진실은 단 두 사람만이 알고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