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의 역사

인도 농민운동의 역사: 초기 운동부터 전인도 키산 사바까지

이 글에서는 인도 농민운동의 역사를 시기별로 나누어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참파란 사티아그라하의 성공에서 출발한 초기 농민운동과, 이후 조직적으로 발전한 키산 사바(Kisan Sabha)의 결성 과정까지 핵심 흐름을 정리했습니다.

농민운동의 역사

초기 농민운동

참파란 사티아그라하(Champaran Satyagraha)의 성공은 비부샤란 프라사드를 비롯해 차프라(사란 지역)의 농민들에게 착취와 폭정에 맞서 싸울 영감을 불어넣었습니다. 1919년 6월, '스와미 비디아난드'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진 비부샤란 프라사드는 다르방가 왕가(Darbhanga Raj)에 맞서는 운동을 위해 마두바니 지구의 농민들을 조직했습니다.

이 운동의 핵심 요구는 두 가지였습니다. 첫째, 세금 징수 과정에서 왕가 관리들의 횡포와 만행에 대한 항의, 둘째 숲에서 과일과 나무를 채취할 수 있는 권리 보장이었습니다.

운동은 점차 푸르니아, 사하르사, 바갈푸르, 문게르 등 여러 지구로 확대되었습니다. 이에 다르방가 마하라자는 1922년 운동의 영향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주 의회를 구성하는 등 대응에 나섰습니다. 그러나 결국 마하라자가 농민들의 요구 중 일부를 수용하면서 운동은 점차 소강상태에 접어들었습니다.

키산 사바(Kisan Sabha)

1922년에서 1923년 사이, 사하이 무함마드 주베르와 스리 크리슈나 싱이 문게르에서 키산 사바를 결성하면서 농민 조직화가 본격화되었습니다. 이어 1928년 3월 4일, 스와미 사하자난드 사라스와티가 비타(파트나)에서 키산 사바를 정식으로 설립했습니다. 1929년에는 소네푸르 박람회에서 열린 회의를 통해 비하르 주 키산 사바가 공식 출범했으며, 스와미 사하자난드가 회장으로, 스리 크리슈나 싱이 서기로 선출되었습니다.

비하르 각지의 농촌으로 조직을 확산시키는 과정에서는 카리아난드 샤르마, 라훌 상크리티야얀, 판차난 샤르마, 야두난단 샤르마 등 좌파 계열 지도자들의 적극적인 지원이 커다란 힘이 되었습니다. 1935년에는 키산 사바 회의에서 자민다리(zamindari, 토지 소유 제도) 폐지 결의안이 통과되며 운동의 목표가 한층 명확해졌습니다.

카리아난드 샤르마의 지도 아래에서는 문게르 지구를 중심으로 바디야 탈(Badhiya Tal) 또는 바카샤트(Bakashat) 운동이 전개되었습니다. 그리고 1936년, 러크나우에서 열린 회의를 통해 스와미 사하자난드를 의장으로 하는 전인도 키산 사바(All India Kisan Sabha)가 결성되었고, N.G. 랑가(N.G. Ranga) 교수가 서기로 임명되었습니다. 이로써 인도 농민운동은 지역 단위의 저항을 넘어 전국 규모의 조직적 운동으로 도약하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