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의 역사

1970년 미국의 캄보디아 침공,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1970년 4월 29일, 닉슨 대통령의 침공 선언

1970년 4월 29일, 미국의 리처드 닉슨(Richard Nixon) 대통령은 미군이 캄보디아를 침공하고 있다고 공식 발표했습니다. 남베트남 군과의 협조 아래 계획된 이 군사 작전은 ‘메뉴 작전(Operation Menu)’이라는 코드명으로 알려져 있으며, 정부가 내세운 침공 명분은 캄보디아 영내에 자리 잡은 북베트남군 거점을 파괴하는 것이었습니다.

‘메뉴 작전’이라는 이름은 본래 1969년 3월부터 비밀리에 진행된 캄보디아 내 북베트남군 거점 폭격 작전에 붙여진 것으로, 이번 지상 침공은 그러한 공중 작전의 연장선에서 추진된 것이었습니다.

침공 열흘 전, 키신저가 던진 경고성 발언

침공이 시작되기 열흘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헨리 키신저(Henry Kissinger)는 베트남 관련 정책 변화를 검토 중이라는 뜻을 내비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소국들이 우리의 정책을 좌우하거나, 전쟁과 평화를 가를 수 있는 정책을 무력화하도록 방치할 여유가 있는 세상에 살지 않습니다.”

국민에게 밝힌 침공의 목적

침공이 개시된 같은 날, 닉슨 대통령은 미국 국민을 상대로 침공 명령의 배경을 설명했습니다. 그는 미군과 남베트남군을 공격하는 기지로 사용되던 북베트남군의 은신처를 소탕하기 위한 조치라고 밝히면서, 동시에 미군 사상자와 미국의 개입 규모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작전을 수행하겠다고 강조했습니다.

거센 반발과 베트남 전쟁의 확대

그러나 이번 침공은 미국 사회 전반에서 큰 반발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많은 미국인들은 이를 불법적인 전쟁 행위로 간주했으며, 캄보디아 침공은 베트남 전쟁을 인도차이나 반도의 다른 나라들로 확대시키는 계기가 되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동시에 이 결정은 미국 내 반전 운동에 강한 동력을 실어 주었습니다. 침공 발표 이후 전국 대학에서 시위가 잇달았고, 같은 해 5월에는 오하이오주 켄트 주립대학교에서 국민위병의 발포로 학생 4명이 숨지는 참사가 벌어지면서 반전 여론은 한층 더 격화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