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의 역사

미국 역대 최악의 대통령으로 꼽히는 프랭클린 피어스, 그는 누구인가?

인기 없는 대통령 이야기가 계속됩니다.

미국 역대 대통령들을 살펴보면, 앤드류 잭슨부터 시어도어 루스벨트까지 약 100년 사이에 인기 없는 대통령들이 집중적으로 등장합니다.

이 시기 미국은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국제적인 시각에서 보면 영향력이 크지 않았고, 여전히 영국 식민지 출신 국가라는 점에서 국제적 평가도 높지 않았을 것입니다.

게다가 노예제 존속을 주장하는 세력이 국정을 장악해 원주민 박해와 노예제 강화를 법으로 뒷받침하던 시대였습니다. 만약 제가 그 시절 미국인이었다면, 이 시대를 부끄러워했을 것입니다.

이번 글의 주인공 프랭클린 피어스(Franklin Pierce) 역시 역사상 최악의 대통령 후보군 중 하나로 꼽힙니다.

19세기 태생 최초의 대통령

프랭클린 피어스는 1804년 뉴햄프셔주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 벤자민 피어스(Benjamin Pierce)는 미국 독립전쟁 당시 뉴햄프셔 민병대 지휘관으로 참전했으며, 두 차례에 걸쳐 뉴햄프셔 주지사를 지냈습니다.

그는 15세에 보우딘 대학교(Bowdoin College)에 진학해 법학을 공부했고, 졸업 후 변호사로 활동했습니다. 아버지가 주지사로 재직하던 시절 프랭클린도 뉴햄프셔 주의회 의원이 되었고, 이후 민주당 소속으로 연방 하원과 상원 의원을 거쳤습니다.

또한 뉴햄프셔 주 검찰총장을 역임했으며, 미국-멕시코 전쟁에 참전해 마침내 준장 계급까지 올라갔습니다.

이후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출마하여 1853년 미국 제14대 대통령에 당선되었습니다.

미국의 14대 대통령

미국 역대 최악의 대통령으로 꼽히는 프랭클린 피어스, 그는 누구인가?

프랭클린 피어스의 임기 기간에 벌어진 일들은 미국 역사에서 완전한 흑역사로 남아 있습니다.

전임자 밀러드 필모어(Millard Fillmore) 대통령 재임 시절 통과된 도망노예법에 대한 반발이 거세던 가운데, 1852년 해리엇 비처 스토(Harriet Beecher Stowe)의 『톰 아저씨의 오두막』이라는 역사를 바꾼 책이 출간되었습니다. 여론은 노예제 폐지 쪽으로 크게 기울어져 있었습니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그는 시대의 흐름에 역행해 노예제 존속을 주장했고, 미주리 타협을 폐기하며 악명 높은 캔자스-네브래스카법(Kansas-Nebraska Act)을 성립시켰습니다.

1820년 미주리주가 연방에 가입할 때 만들어진 미주리 타협은 북위 36도 30분선 이북에서는 노예주를 허용하지 않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러나 1854년 캔자스와 네브래스카를 주로 승격시키면서, 해당 지역 주민들이 직접 자유주로 할지 노예주로 할지 결정하도록 하는 법안이 통과되었습니다.

이에 맞서 에이브러햄 링컨(Abraham Lincoln)은 노예제 폐지를 기치로 공화당 창당을 선언했고, 미국은 남북으로 분열되는 위기를 맞았습니다.

프랭클린 피어스는 서부 지역으로 노예제를 확장하려는 정책에 박차를 가했고, 이로 인해 북부 주들과 척을 지게 되었습니다.

또한 노예주 확장을 노리던 남부를 위해 쿠바를 스페인으로부터 할양받아 새로운 주로 편입시켜 남부에 합류시키자는 내용의 '오스텐드 선언문(Ostend Manifesto)'이 발표되었지만, 이는 유럽 각국의 비판을 받았습니다. 결국 프랭클린 피어스는 국내외 양면에서 비난을 감수해야 했습니다.

1856년에는 매사추세츠주 상원의원 찰스 섬너(Charles Sumner)가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상원의원 프레스턴 브룩스(Preston Brooks)에게 습격당해 중상을 입으면서 남북 갈등이 더욱 격화되었고, 남북전쟁은 불가피한 국면에 들어섰습니다.

프랭클린 피어스는 이 시기 공적·사적으로 모두 불운했습니다. 세 명의 자녀를 잇달아 잃었는데, 특히 취임 직전 아들 벤저민이 열차 사고로 눈앞에서 목숨을 잃는 비극을 겪었습니다. 게다가 낮은 지지율 때문에 다음 대선에서 민주당의 공천조차 받지 못했습니다.

아마 이런 사연들 때문일 것입니다. 퇴임 후 프랭클린 피어스는 알코올 중독에 빠졌고, 1869년 간경변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 부분은 정말 안타까운 대목입니다.

프랭클린 피어스에 대한 개인적 평가

자식을 잃고 술에 빠졌다는 점은 안타깝지만, 근본적으로 그가 미국 역대 최악의 대통령 중 한 명이라는 평가는 타당합니다.

매우 어려운 시기에 대통령이 되었음에도 남북 갈등이라는 거대한 문제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고, 오히려 북부를 자극하며 세계 여론마저 적으로 돌렸습니다. 노예제에 깊이 공감한 그의 비인도성까지 고려하면, 부정적 요소만 많고 더할 만한 업적이 거의 없다는 평가가 나오는 것은 당연합니다.

게다가 남북전쟁 당시 남부의 남부동맹(Confederate States of America)을 지지하면서 명성에 더 큰 타격을 입혔고, 이는 되돌릴 수 없는 결과가 되었습니다.

대통령이 이렇게 나쁜 평가를 받는 경우는 드물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국력은 쇠퇴하기는커녕 오히려 계속 성장했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경제가 성장하기 위해 정치가 반드시 잘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교훈을 남겨줄 수도 있는 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