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암스테르담은 미국 식민지 중 가장 인종적으로 다양한 곳이었을까?
오늘날의 뉴욕은 네덜란드 지배 시절에는 '뉴암스테르담(New Amsterdam)'이라고 불렸습니다. 하지만 뉴암스테르담이 당시 북미 식민지 중 인종적으로 가장 다양한 곳이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 타이틀은 아마도 펜실베이니아에 돌아갈 가능성이 높습니다.
국제적인 도시였던 뉴암스테르담
물론 뉴암스테르담 역시 상당히 국제적인 항구 도시였습니다. 17세기 중반의 기록에 따르면 이곳에서는 무려 18개의 언어가 사용되었으며, 네덜란드인 외에도 독일인, 프랑스인, 스칸디나비아인, 자유 흑인과 노예 신분의 아프리카인, 유대인 등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한곳에 모여 살았습니다.
그럼에도 펜실베이니아가 더 다양했던 이유
그러나 창립자 윌리엄 펜(William Penn)의 종교적 관용과 이민 장려 정책 덕분에, 펜실베이니아에는 잉글랜드 퀘이커교도를 비롯해 독일인(훗날 '펜실베이니아 더치'로 알려짐), 스코틀랜드-아일랜드인, 스웨덴인, 네덜란드인 등 유럽 각지에서 온 이주민들이 대거 유입되었습니다. 여기에 원주민인 레나페(Lenape)족과의 공존까지 더해져, 펜실베이니아는 종교와 민족 모두에서 식민지 시대 가장 이질적인 사회로 평가받게 되었습니다.
결론적으로 뉴암스테르담은 분명 다문화적인 도시였지만, '식민지 중 가장 인종적으로 다양한 곳'이라는 칭호는 펜실베이니아에게 돌아가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