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의 역사

식민지 시대 노스캐롤라이나 농장의 주인은 누구였을까?

식민지 시대 노스캐롤라이나의 농장은 대부분 잉글랜드를 비롯한 유럽 여러 나라에서 건너온 부유한 백인 남성들이 소유했습니다. 이들은 식민지 사회에서 막강한 사회적·경제적 권력을 쥐고 있었으며, 상당수가 정치와 정부 운영에 직접 참여하며 지역을 이끌었습니다. 다만 버지니아나 사우스캐롤라이나에 비해 대규모 플랜테이션의 비중이 낮았고, 담배·옥수수 재배와 함께 송진·피치 같은 해군 물자 생산이 중요한 산업이었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식민지 노스캐롤라이나를 대표했던 농장주들

에드워드 모즐리(Edward Moseley)

18세기 초 노스캐롤라이나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중 한 명으로, 식민지 최초의 공식 측량사를 역임하며 광대한 토지를 확보했습니다. 의회 의원과 판사로도 활동하며 식민지 정치의 중심에 섰던 인물입니다.

새뮤얼 존스턴(Samuel Johnston)

헤이즈 농장(Hayes Plantation)을 소유한 저명한 농장주이자 변호사로, 미국 독립 운동의 핵심 인물이었습니다. 이후 노스캐롤라이나 주지사와 연방 상원의원을 지냈습니다.

리처드 도브스 스페이트(Richard Dobbs Spaight)

뉴번(New Bern) 일대에 넓은 토지를 보유한 농장주로, 미국 독립선언서에 서명했으며 노스캐롤라이나 주지사도 역임했습니다.

윌리엄 후퍼(William Hooper)

변호사이자 농장 소유자로, 독립선언서 서명자 중 한 명입니다. 왕당파의 박해를 받으면서도 독립을 굳게 지지한 인물로 기록됩니다.

존 애시(John Ashe)

상품 작물 재배로 부를 축적한 농장주이자 민병대 장교로, 인지세법(스탬프법)에 대한 저항 운동을 이끌며 식민지 주민들의 권익을 옹호했습니다.

흔히 혼동되는 인물들

미국 남부 농장 문화를 이야기할 때 자주 등장하는 몇몇 인물은 사실 식민지 시대 노스캐롤라이나와는 무관합니다. 토머스 제퍼슨과 제임스 매디슨은 각각 버지니아의 몬티첼로(Monticello)와 몬펠리어(Montpelier)를, 로버트 E. 리는 버지니아의 아링턴 하우스(Arlington House)를 소유했으며, 앤드류 잭슨의 더 허미티지(The Hermitage)는 테네시에 위치합니다. 또한 조지 워싱턴 카버는 노예 신분으로 태어나 땅콩·고구마의 수백 가지 용도를 개발한 위대한 농업 과학자였지만, 농장 소유자가 아니었을 뿐만 아니라 식민지 시대보다 한 세기 가까이 뒤에 태어난 인물입니다.

마무리

정리하면, 식민지 시대 노스캐롤라이나의 농장은 잉글랜드계를 중심으로 한 유럽 출신 부유층이 소유했으며, 이들은 경제력을 바탕으로 식민지 정치를 주도했습니다. 다만 노스캐롤라이나는 인접 식민지에 비해 소규모 자영농의 비중이 높았다는 점에서 농장 문화의 양상이 조금 달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