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독립혁명(1775~1783) 당시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은 영국군과 미국 독립 진영, 양쪽 모두에서 싸웠습니다. 그들의 선택은 단순한 정치적 신념보다 '자유'를 향한 절박한 희망에 의해 크게 좌우되었습니다.
영국 측에 합류한 아프리카계 미국인들
흥미롭게도 많은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영국 진영에서 싸우는 길을 택했습니다. 결정적인 계기는 1775년 버지니아 총독 던모어 경(Lord Dunmore)이 발표한 '던모어 선언'이었습니다. 이 선언은 영국 측에 가담한 노예에게 자유를 부여하겠다고 약속한 것으로, 수천 명의 흑인 노예들이 자유를 찾아 영국군으로 몰려들게 만들었습니다.
당시 대부분의 흑인들은 미국이 독립하더라도 자신들의 노예 신분이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오히려 독립이 기존에 누리던 제한된 자유마저 빼앗아 갈 수 있다고 우려한 이들이 많았고, 이러한 불안감이 영국 편에 서는 선택으로 이어졌습니다.
애국파(Patriot) 진영에서 싸운 사람들
반면 일부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은 미국 독립 진영에 서서 전장에 나섰습니다. 보스턴 학살에서 최초의 희생자가 된 크리스퍼스 어택스(Crispus Attucks)와 같은 인물이 상징적으로 여겨지며, 렉싱턴·콩코드 전투와 벙커힐 전투에 참전한 자유 흑인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독립선언서에 담긴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창조되었다'는 이상이 언젠가 자신들에게까지 확대되기를 바랐습니다.
갈린 선택, 남겨진 질문
결국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참전 방향은 개개인의 처지와 판단에 따라 갈렸습니다. 자유를 약속받은 노예들은 영국을, 평등의 이상을 믿은 자유 흑인들은 애국파를 선택하는 경향이 뚜렷했습니다. 이러한 역사는 혁명이 내건 '자유'가 당대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적용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오늘날까지 회자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