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신분의 아프리카계 미국인(자유 흑인)들이 미국 독립전쟁에서 애국파(Patriots)를 위해 무기를 들기 시작한 시기는 1775년입니다. 특히 1775년 4월 19일에 벌어진 렉싱턴·콩코드 전투(Battles of Lexington and Concord) 직후부터 그들의 참전이 본격화되었습니다.
독립전쟁 초기의 자유 흑인 참전
렉싱턴과 콩코드에서 영국군과 최초로 충돌이 일어나자, 자유 흑인들은 곧바로 식민지 민병대에 합류했습니다. 실제로 렉싱턴 전투 당시 매사추세츠 민병대에 속해 있던 프린스 에스터브룩(Prince Estabrook)은 독립전쟁에 참전한 최초의 흑인 병사 중 한 명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참전 배경과 변화된 정책
그러나 초기에는 모든 흑인의 입대가 환영받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대륙회의와 조지 워싱턴 장군은 처음에 흑인 병사의 정식 징집을 제한했지만, 병력 부족과 자유 흑인들의 지속적인 참전 요구로 인해 정책은 점차 완화되었습니다. 이후 많은 주에서 흑인의 입대를 허용했고, 일부 노예는 주인의 동의 하에 군 복무를 조건으로 자유를 얻기도 했습니다.
자유를 위한 싸움
전쟁 기간 동안 약 5,000명에 달하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애국파 진영에서 복무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들에게 이 전쟁은 단순히 식민지의 독립만이 아니라, 자신과 가족의 자유를 쟁취할 수 있는 중요한 기회였습니다. 피터 세일럼(Peter Salem)처럼 벙커힐 전투 등 주요 전투에서 활약한 인물들도 있었으며, 이들의 공헌은 미국 건국의 역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