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남북전쟁(1861~1865)이 발발했을 때 미국인들이 일제히 북부를 지지했다는 통념은 사실과 다릅니다. 북부 주 인구의 대다수가 연방(Union)의 유지를 지지한 것은 분명하지만, 남부 여러 주에서는 남부연합(Confederacy)에 대한 확고한 지지가 존재했고, 북부 내부에서도 전쟁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습니다. 남북전쟁은 미국 역사상 가장 깊이 분열된 갈등이었으며, 사람들의 충성심은 단순히 지리적 위치만으로 결정되지 않았습니다.
남부에도 존재했던 연방 지지 세력
남부연합에 가담한 주들 안에서도 연방에 대한 충성심을 유지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버지니아주 서부 지역입니다. 이곳은 노예제 의존도가 낮은 산악 농업 지대여서 탈퇴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컸고, 결국 연방에 잔류하기 위해 버지니아에서 분리되어 1863년 웨스트버지니아주로 승격되었습니다.
테네시 동부 산악 지역 역시 탈퇴에 반대하는 연방 지지자가 많아 남부연합 정부와 끊임없이 갈등을 빚었습니다. 노스캐롤라이나, 앨라배마 북부, 아칸소 북서부 등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나타났으며, 이들은 게릴라전, 밀수, 정보 제공 등 다양한 방식으로 연방을 도왔습니다.
북부 내부의 균열과 반전 운동
북부 역시 하나로 뭉쳐 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코퍼헤드(Copperhead)'라고 불린 평화파 민주당원들은 전쟁이 잘못된 선택이라며 즉각적인 강화 협상을 요구했고, 오하이오의 클레멘트 밸런디검 같은 정치인은 링컨 행정부를 격렬하게 비판했습니다.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피로감이 누적되었고, 1863년에는 징병제에 반대하는 뉴욕 징병 폭동이 발생해 수백 명이 목숨을 잃는 참극이 벌어졌습니다. 이처럼 북부 사회 내부에서도 전쟁 수행 여부를 두고 심각한 논쟁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경계 주가 보여준 복잡한 선택
노예제를 유지하면서도 연방에 잔류한 소위 '경계 주(Border States)'의 사례는 이러한 복잡성을 잘 보여줍니다. 메릴랜드, 델라웨어, 켄터키, 미주리는 모두 노예주였지만 남부연합에 합류하지 않았습니다. 켄터키는 처음에 중립을 선언했다가 남부군의 침공 이후 연방 진영에 섰고, 미주리에서는 친연방 세력과 친남부 세력 간에 내전이나 다름없는 유혈 충돌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충성심은 지리보다 복잡했다
결론적으로 남북전쟁 초기의 미국 여론은 '북 대 남'이라는 단순한 도식으로 나눌 수 없습니다. 한 가족조차 진영이 갈라지는 경우가 흔했고, 개인의 출신 배경, 경제적 이해관계, 노예제에 대한 신념, 지역 공동체와의 유대 등 다양한 요소가 충성심을 좌우했습니다. 바로 이러한 복잡성야말로 남북전쟁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열쇠라고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