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의 역사

창조론은 누가 시작했을까? 창조론의 기원과 핵심 인물들

창조론의 기원


창조론은 종교 경전과 신앙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다양한 문화권에서 각기 다른 창조 신화와 이야기가 존재해 왔지만, '창조론(creationism)'이라는 특정 용어는 19세기에 들어서야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1844년 스코틀랜드 자유교회 목사 토머스 칼머스(Thomas Chalmers)는 창세기의 창조 기록을 문자 그대로 해석해야 한다는 믿음을 설명하면서 '창조론'이라는 용어를 사용했습니다.


다만 종교 경전의 문자적 해석을 강조하고 진화 과학에 맞서는 현대 창조론 운동은 20세기에 이르러서야 본격적인 추진력을 얻게 됩니다. 창조론을 최초로 시작한 특정 개인을 지목하기는 어렵지만, 그 발전과 확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저명한 인물들이 여럿 있습니다.


현대 창조론 운동을 이끈 핵심 인물들


1. 조지 매크리디 프라이스(George McCready Price)


미국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소속 지질학자로, '젊은 지구' 창조론 관점을 옹호하는 수많은 책과 글을 집필했습니다. 1923년 출간된 저서 『신지질학(The New Geology)』은 창조론 사상을 대중화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2. 헨리 모리스(Henry Morris)


미국의 엔지니어이자 창조론자로, 1972년 창조연구소(Institute for Creation Research, ICR)를 공동 설립했습니다. 1961년 출간된 『창세기의 홍수(The Genesis Flood)』를 비롯한 여러 저서를 남겼으며, 이 책은 현대 창조론 운동의 기초가 되는 고전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3. 드웨인 기시(Duane Gish)


생화학자이자 창조론 운동의 지도적 인물이었습니다. 리처드 도킨스, 프랜시스 크릭 등 저명한 진화생물학자들과 공개 토론을 벌였으며, 1973년 출간된 『진화: 화석은 아니라고 말한다(Evolution: The Fossils Say No!)』에서 창조론적 관점에서 진화론에 반박하는 논거를 펼쳤습니다.


4. 켄 햄(Ken Ham)


호주 출신 창조론자로, 기독교 변증학 단체 '창세기에 대한 답변(Answers in Genesis, AiG)'의 회장입니다. 노아의 방주를 실물 크기로 재현한 '아크 인카운터(Ark Encounter)'와 '창조 박물관(Creation Museum)' 등의 창조론 테마 시설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이곳에서는 성경의 창조 기록을 문자 그대로 소개합니다.


이처럼 여러 인물들이 창조론 사상을 체계화하고 널리 퍼뜨리는 데 앞장섰으며, 진화 과학의 대안으로 창조론을 알리는 데 헌신하는 단체들을 설립하는 데에도 핵심적인 역할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