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후반, 포르투갈의 오랜 식민지였던 앙골라에서는 여러 독립 운동 단체가 결성되기 시작했습니다. MPLA(앙골라 해방인민운동), FNLA(앙골라 민족해방전선), 그리고 UNITA(앙골라 완전독립민족연합)가 대표적입니다. 이들 단체는 저마다 고유한 이데올로기를 내세웠고, 서로 다른 민족 집단을 기반으로 하고 있었습니다.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포르투갈 식민 통치에 대한 무장 저항이 본격화되었고, 포르투갈은 대규모 병력을 파병해 이에 대응했습니다. 그러나 모잠비크 등 다른 식민지에서도 독립 전쟁이 동시에 벌어지면서 상황은 점점 악화되었고, 결국 1974년 리스본에서 카네이션 혁명이 일어나 포르투갈의 독재 체제가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앙골라는 이듬해인 1975년 독립을 쟁취했지만, 곧바로 내전의 소용돌이에 휩싸이게 됩니다. 공동의 적이 존재할 때는 하나로 뭉쳤던 독립 운동 세력들이, 독립 이후에는 권력 장악을 위해 서로 총구를 겨누게 된 것입니다.

MPLA의 집권과 냉전 세력의 개입
냉전 시대의 대결 구도와 앙골라에 매장된 풍부한 유전 자원은 미국과 소련 모두가 이 땅을 전략적 요충지로 여길 수밖에 없는 이유였습니다. 소련은 MPLA에 무기와 군사 고문단을 지원했고, 마르크스주의 노선을 걷던 쿠바 정권은 수많은 군인을 아프리카 대륙에 파견해 MPLA를 지원했습니다. 반면 FNLA는 미국, 자이르(현 콩고민주공화국),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후원을 받았습니다. 포르투갈은 철수 과정에서 당시 가장 강력한 세력이었던 MPLA에 권력을 이양했고, 정부의 지위에 오른 MPLA는 FNLA를 격파하는 데 성공합니다. 결국 중국, 남아프리카 공화국, 자이르의 지원을 등에 업은 UNITA만이 저항 세력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카빈다 유전을 지킨 쿠바 군인들
그런데 여기서 냉전 역사상 가장 아이러니한 장면이 등장합니다. 앙골라 정부는 쿠바 군인들에게 급여를 지급하기 위해 카빈다 지역의 유전을 반드시 보호해야 했습니다. 자이르의 침공 위협에 더해, 카빈다의 독립을 추구하는 분리주의 세력 FLEC의 방해 공작까지 겹치면서 상황은 더욱 복잡해졌습니다. 문제는, 그 카빈다 유전을 실제로 개발하던 곳이 미국 석유 회사 걸프 오일(Gulf Oil)이었다는 점입니다. 결국 약 15,000명의 쿠바 군인들이 자본주의 진영의 적국인 미국의 석유 이익을 보호하는 임무를 수행하게 된 것입니다. 이념 대립의 극한에 있던 냉전 시대에 펼쳐진, 역설 그 자체인 역사의 한 장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