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의 역사

존 브라운은 하퍼스 페리 무기고에서 무기 10만 정을 탈취해 무엇을 이루려 했을까?

단순한 무기 탈취가 아니라 '노예 봉기'가 목표였다

많은 사람들이 존 브라운(John Brown)이 하퍼스 페리(Harpers Ferry) 무기고를 습격한 이유를 단순히 무기를 손에 넣기 위해서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사실은 달랐습니다. 그의 진짜 계획은 무기고에 보관된 약 10만 정의 총기를 탈취한 뒤, 이를 인근의 노예들에게 나누어 주어 노예제 폐지를 위한 대규모 봉기를 일으키는 것이었습니다.

1859년 10월 16일, 역사적인 밤

1859년 10월 16일 밤, 브라운은 흑인 동료 5명을 포함해 약 20여 명의 무리와 함께 당시 버지니아(현재 미국 웨스트버지니아주)에 위치한 연방 조병창과 무기고를 기습했습니다. 그는 이곳에서 확보한 무기로 무장한 노예들이 남부 여러 곳에서 일제히 들고일어나 자유를 위한 투쟁을 벌이리라 굳게 믿었습니다.

실패한 습격, 그러나 남겨진 유산

그러나 현실은 브라운의 기대와 달랐습니다. 주변 노예들이 대거 합류하지 않으면서 계획은 급속도로 무너졌고, 로버트 E. 리(Robert E. Lee) 대령이 이끄는 미합중국 해병대에게 포위당한 브라운은 결국 체포되었습니다. 그는 반역죄, 살인죄, 노예 반란 선동죄로 재판을 받아 유죄 판결을 받았고, 1859년 12월 2일 교수형에 처했습니다.

습격 자체는 실패로 끝났지만, 브라운의 결사적인 저항은 전 미국에 거대한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그는 북부에서는 노예제에 맞선 순교자로 추앙받았고, 그의 행동은 남북 전쟁으로 치닫는 불씨가 되었습니다. 북군이 부르며 행진하던 노래 "존 브라운의 몸은 땅속에 묻혔으되(John Brown's Body)"는 오늘날까지 그의 유산을 상징하는 곡으로 남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