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남북전쟁(1861~1865) 기간 대부분 동안 포토맥군(Army of the Potomac)을 지휘했던 북부 연방군 장군은 바로 조지 브린턴 매클렐런(George Brinton McClellan, 1826~1885)입니다. 그는 뛰어난 조직력으로 북군 최정예 부대를 일궈낸 인물이지만, 지나칠 정도로 신중한 성격 때문에 논란도 함께 남긴 장군입니다.
조지 B. 매클렐런은 누구인가?
매클렐런은 1826년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에서 태어나 웨스트포인트 육군사관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습니다. 멕시코 전쟁에서 복무한 뒤 철도 회사 임원으로 활동하다가, 전쟁이 발발하자 다시 군에 복귀하여 빠르게 승진했습니다. 젊은 나이에 소장 계급에 올랐고, '젊은 나폴레옹(Young Napoleon)'이라는 별명으로 불릴 만큼 큰 기대를 받았습니다.
포토맥군의 창설과 조직
1861년 7월 불러 런 전투에서 북군이 참패하자, 매클렐런은 와싱턴 D.C. 방어를 맡게 되었고 이후 포토맥군을 직접 창설하고 사령관으로 임명되었습니다. 그는 흩어져 있던 병력과 물자를 체계적으로 정비하고 훈련시켜, 포토맥군을 강력한 전투 부대로 재탄생시켰습니다. 또한 1861년 11월부터 1862년 3월까지 북군 전체의 총사령관(General-in-Chief)직도 수행했습니다.
앤티텀 전투와 신중함의 한계
그러나 매클렐런은 실전에서 과도하게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습니다. 항상 적군의 병력을 실제보다 많다고 판단해 공세를 미루곤 했고, 이는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의 큰 불만을 샀습니다. 1862년 반도 전역(Peninsula Campaign)에서 리치먼드 함락에 실패했고, 같은 해 9월 앤티텀 전투에서는 로버트 E. 리 장군의 메릴랜드 침공을 저지하는 데 성공했지만 결정적인 추격에 나서지 않아 승기를 놓쳤습니다. 결국 1862년 11월, 링컨은 그를 포토맥군 사령관직에서 해임했습니다.
해임 이후의 삶
군에서 물러난 매클렐런은 1864년 대통령 선거에 민주당 후보로 출마해 링컨과 대결했으나 낙선했습니다. 이후 뉴저지주지사를 역임하며 여생을 보냈고, 1885년 세상을 떠났습니다. 비판적인 평가가 많았던 그였지만, 포토맥군이라는 북군의 핵심 전력을 구축한 공헌은 오늘날에도 높이 평가받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