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드아일랜드는 미국 건국 13개 식민지 중 헌법 비준이 가장 늦었던 주입니다. 델라웨어가 1787년 12월 7일 최초로 헌법을 비준한 것과 달리, 로드아일랜드는 1790년 5월 29일에야 비준에 동의했습니다. 이는 연방 정부가 출범한 지 약 1년 반이 지난 뒤였으며, 조지 워싱턴이 초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이후에도 상당한 시간이 더 흘러야 했던 일입니다.
'로그 아일랜드'라 불릴 만큼 독립성을 중시하다
로드아일랜드는 식민지 시절부터 강한 자율성을 자랑스럽게 여겼습니다. 실제로 다른 주에서는 고집스럽다는 뜻을 담아 이곳을 '로그 아일랜드(Rogue Island)'라고 부를 정도였습니다. 1787년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제헌회의에도 로드아일랜드는 대표단을 파견하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보이콧했습니다.
비준을 거부한 경제적·정치적 이유
연합규약 체제 하에서 로드아일랜드는 자체 화폐를 발행하고 외국 선박에 관세를 부과하는 등 상당한 재정적 이익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더 강력한 중앙정부의 탄생은 오히려 자신들에게 손해라고 판단했습니다. 또한 내륙 농촌 지역 주민들은 새 연방 정부가 부과할 재산세와 국채 이자 상환 부담을 크게 우려했습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1788년 3월 열린 주민 투표에서 헌법은 2,708표 대 237표라는 압도적인 격차로 부결되었습니다.
결국 연방에 합류하다
상황을 바꾼 것은 현실적인 압박이었습니다. 의회는 로드아일랜드를 '외국'처럼 취급해 관세를 매기고 무역을 제재하겠다고 경고했고, 인접 주들 역시 무역 보복에 나서겠다고 밝혔습니다. 여기에 권리장전(Bill of Rights)이 수정헌법 형태로 제안되면서 개인의 자유를 충분히 보장받을 수 있다는 확신이 생기자 여론이 점차 부드러워졌습니다.
결국 1790년 5월 29일, 프로비던스에서 열린 주 비준 회의는 34대 32라는 근소한 표차로 헌법 비준을 승인했습니다. 그리하여 로드아일랜드는 마지막으로 미국 연방에 가입하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