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을 때, 미국은 중립 정책을 유지했습니다. 유럽 전역을 휩쓴 거대한 분쟁에 휘말리지 않으려 했고, 대륙을 갈라놓은 복잡한 역학 관계와 정치적 동맹 구도 또한 잘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윌슨 대통령의 '공정' 선언
우드로 윌슨(Woodrow Wilson) 대통령은 미국이 '공정(impartial)'할 것이라고 공식 선언하며, 국민들 사이에서도 평화와 중립을 지향하도록 독려했습니다. 당시 미국은 신대륙의 번영을 지키기 위해 유럽의 전쟁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분명히 했습니다.
흔들리는 중립, 변해가는 여론
그러나 전쟁이 장기화되고 지정학적 파장이 커지면서 중립을 지키는 일은 점점 어려워졌습니다. 미국은 연합국(프랑스·영국·러시아)과 동맹국(독일·오스트리아-헝가리) 양측 모두와 무역 관계를 맺고 있었고, 어느 한쪽에 지원을 제공할 경우 어떤 결과가 따라올지를 두고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공식적인 중립 선언과 달리, 전쟁이 격화되자 미국 여론은 서서히 연합국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습니다. 결정적인 계기는 독일의 무제한 잠수함 작전이었습니다. 특히 1915년 5월, 영국 여객선 루시타니아호(Lusitania)가 독일 잠수함의 공격으로 침몰하여 미국인 128명을 포함한 수많은 승객이 목숨을 잃자, 미국 사회 곳곳에서 분노가 폭발했습니다. 미국인의 생명과 상업적 이익에 대한 위협이 커질수록, 여론은 연합국을 지원하기 위한 개입으로 점차 이동해갔습니다.
참전으로 가는 마지막 갈림길
이러한 변화 속에서도 미국은 1917년까지 공식적으로 중립을 고수했습니다. 윌슨 대통령은 평화 협상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교전국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을 자처하며, 불필요한 충돌을 피하고 싶어 했습니다.
하지만 1917년 초 상황은 급변합니다. 독일이 무제한 잠수함 작전을 재개해 미국 선박과 국민의 생명을 위협했고, 나아가 멕시코를 끌어들여 미국에 대항하는 동맹(짐머만 전보 사건)을 꾀하면서 미국은 전쟁 직전까지 몰려들었습니다.
윌슨 대통령은 국가의 권리, 원칙, 주권을 수호해야 할 의무를 강조하며 의회 연설을 통해 선전포고를 요청했습니다. 마침내 1917년 4월 6일, 미국은 제1차 세계대전에 정식으로 참전했습니다. 이 결정은 미국 외교 정책의 근본적인 전환점이자, 세계 무대에서 미국의 역할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