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워싱턴 대통령은 위스키 반란(Whiskey Rebellion)을 진압하기 위해 정규 연방군을 파견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그는 약 15,000명의 주 민병대(state militia)를 소집하여 반란에 대응했습니다. 일부 기록에서는 이 규모를 약 13,000명 안팎으로 추산하기도 합니다.
위스키 반란의 배경
1791년, 알렉산더 해밀턴 재무장관의 재정 계획에 따라 연방정부는 증류주에 대한 소비세, 이른바 '위스키 세금'을 부과했습니다. 이는 독립전쟁으로 인한 막대한 국가 부채를 상환하기 위한 조치였습니다.
그러나 펜실베이니아 서부 등 변경 지역 농민들에게 위스키는 곡물을 쉽게 운반하고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었습니다. 현금이 부족한 이들은 세금 납부에 강하게 반발했고, 1794년에는 세무 관리들을 공격하는 등 저항이 폭력적으로 번져나갔습니다.
워싱턴의 대응: 연방군이 아닌 민병대 소집
1794년 8월, 워싱턴은 1792년 민병법(Militia Act of 1792)에 근거해 여러 주로부터 약 15,000명의 민병대를 소집할 것을 명령했습니다. 이 병력은 뉴저지, 펜실베이니아, 메릴랜드, 버지니아 등에서 차출된 주 방위군 성격의 부대였으며, 상설 정규군이 아니었다는 점이 핵심입니다.
특히 워싱턴은 직접 군대를 이끌고 반란 지역으로 향했습니다. 그는 현직 대통령 신분으로 직접 군대를 지휘한 유일한 미국 대통령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해밀턴 재무장관도 행군에 동행했습니다.
결과와 역사적 의미
압도적인 규모의 민병대가 집결하자 반란은 실질적인 전투 없이 자진 해소되었습니다. 일부 지도자들이 체포되어 반역죄로 유죄 판결을 받았지만, 워싱턴은 이들을 사면했습니다.
위스키 반란의 진압은 탄생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연방정부가 자국민에게 법을 집행할 능력과 의지를 보여준 상징적 사건으로 평가됩니다. 동시에 정규군 대신 주 민병대를 동원한 점은, 상설 정규군에 대한 경계심이 컸던 당시 미국 사회의 분위기를 잘 보여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