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나시 인디언: 브루클린의 원주민 부족
카나시 인디언(Canarsie Indians, '카나르시(Canarsee)'라고도 불림)은 오늘날 뉴욕시 브루클린과 퀸스의 록어웨이 반도 일대에 오랫동안 거주해 온 아메리카 원주민입니다. 이들은 레나페(Lenape)족과 밀접한 혈연적·문화적 관계를 맺고 있었으며, 언어와 전통 또한 상당 부분 공유했습니다.
카나시 족은 반유목 생활을 했습니다. 여름에는 해안가 마을에서 어업에 종사하고, 겨울에는 내륙의 사냥터로 이동하는 계절 이동 방식으로 삶을 꾸렸는데, 이는 동부 해안 원주민들 사이에서 흔히 볼 수 있던 생활 방식이었습니다.
유럽인과의 첫 만남
카나시 족이 유럽인과 처음 접촉한 것은 1609년, 네덜란드 탐험가 헨리 허드슨(Henry Hudson)이 배를 몰고 뉴욕 항에 들어온 시기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당시 카나시 족은 맨해튼 섬의 나이악(Nyack) 또는 마나타(Manhatta)라 불리는 마을을 비롯해 롱아일랜드 서부 일대에 걸쳐 마을을 이루고 살았습니다. 허드슨의 도착은 이후 카나시 족과 네덜란드 정착민 사이에 긴 갈등의 역사가 시작되는 신호탄이 되었습니다.
네덜란드 정착민과의 갈등
네덜란드 정착민들은 빠르게 카나시 족의 땅 대부분을 차지하기 시작했고, 자신들의 정착지를 하나둘 세워 나갔습니다. 카나시 족은 이러한 침략에 맞서 저항했지만 결국 열세에 몰렸고, 1645년 네덜란드와 조약을 체결하며 브루클린과 퀸스 지역의 모든 땅을 넘겨주었습니다. 그 결과 카나시 족은 스태턴아일랜드의 새로운 마을로 강제 이주를 당하게 됩니다.
스태턴아일랜드에서의 나날
스태턴아일랜드로 옮긴 카나시 족은 수십 년간 그곳에 머물렀지만,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브루클린과 퀸스에서 누리던 익숙한 어장과 사냥터가 그리웠고, 추위와 가혹한 생활 여건에도 시달려야 했습니다. 결국 1680년대 무렵, 일부 카나시 족은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합니다.
브루클린 귀환
1680년대 브루클린으로 돌아온 카나시 족은 오늘날 이스트 뉴욕(East New York) 지역에 '카나르시(Caanarsie)'라는 이름의 새로운 마을을 세웠습니다. 이들은 여러 세대에 걸쳐 그곳에서 농사를 짓고, 물고기를 잡고, 사냥을 하며 삶을 이어갔습니다. 그러나 인구는 계속 줄어들었고, 급격히 성장하는 브루클린 시가 판을 벌이면서 결국 마지막 땅마저 잃고 말았습니다.
오늘날의 카나시
카나시 족은 하나의 독립된 부족으로서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그들의 흔적은 브루클린의 '카나시(Canarsie)' 지역 이름에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또한 카나시 문화와 유산을 보존하고 알리기 위해 노력하는 여러 단체들이 활동하고 있어, 이들의 역사와 정신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