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의 역사

1776년 7월 이전, 미국 대륙군의 전황은 과연 순조로웠을까?

1776년 7월 이전, 독립 전쟁의 어두운 초반기

아니요, 1776년 7월 이전까지 미국 측의 전황은 결코 순조롭지 않았습니다. 영국군은 주요 전투에서 우위를 점하는 경우가 많았고, 신생 대륙군(Continental Army)은 훈련과 장비가 크게 부족한 상태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습니다.

벙커힐 전투와 초기의 패배

1775년 6월의 벙커힐 전투(Battle of Bunker Hill)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식민지 민병대는 영국군에 맞서 용맹하게 저항했지만, 결국 탄약이 바닥나면서 진지를 내주고 철수해야 했습니다. 비록 영국군이 약 1,000명에 달하는 사상자를 내는 값비싼 승리를 거두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미국 측의 전략적 패배였습니다.

여기에 1775년 말부터 시작된 캐나다 침공 작전도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리처드 몽고메리와 베네딕트 아널드가 이끄는 부대가 퀘벡을 공격했으나 혹혹한 겨울철 조건 속에서 패배했고, 1776년 여름 무렵에는 캐나다 지역에서 완전히 밀려나야 했습니다.

대륙군의 구조적 한계

대륙군 자체의 문제도 적지 않았습니다. 병사 대부분은 짧은 기간만 복무하는 농부 출신이라 군사 훈련이 체계적이지 않았고, 화약·총기·식량 등 물자는 언제나 부족했습니다. 게다가 복무 기간 만료와 탈영이 잦아 병력이 시시각각 줄어드는 상황이 반복되었습니다.

물론 한 줄기 빛도 있었습니다. 조지 워싱턴이 지휘한 보스턴 포위전은 1776년 3월 도체스터 고지에 대포를 배치하는 데 성공하면서 영국군의 보스턴 철수로 마무리되었고, 이는 미국 측에 큰 희망을 안겨준 소득이었습니다.

독립선언 당시의 위태로운 상황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인 상황은 매우 위태로웠습니다. 1776년 7월 독립선언서가 채택되던 시점, 대륙군은 여러 지역에서 후퇴를 거듭해야 했으며, 곧 뉴욕으로 몰려올 영국군의 대규모 공세 앞에서 전쟁 자체를 패할 위기마저 느껴지는 국면에 놓여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