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의 역사

조지 그렌빌(George Grenville) 총리는 북미 식민지에 대한 영국의 정책을 어떻게 바꾸었나요?

1765년 인지법

그렌빌이 북미 식민지에 대한 영국 정책에 이룬 가장 중요한 변화 중 하나는 1765년 인지세법의 도입이었습니다. 이 법은 신문, 팜플렛, 법률 문서와 같이 식민지에서 사용되는 모든 종이 제품에 세금을 부과했습니다. 그리고 심지어 카드 놀이까지. 이 법은 영국 신민으로서의 식민지 주민의 권리를 직접적으로 침해하는 것으로 간주되어 식민지에서는 매우 인기가 없었습니다.

1765년 분기법

인지세법에 이어 1765년 병영법이 제정되었는데, 이는 식민지가 미국에 주둔한 영국군에게 주택과 보급품을 제공하도록 요구했습니다. 이 행위는 식민지 주민의 권리를 더욱 침해하는 것으로 간주되어 인기가 없었습니다.

1766년 선언법

식민지에서 점점 커지는 불만에 대응하여 영국 정부는 1766년 선언법을 통과시켰습니다. 이 법은 의회가 "어떤 경우에든" 식민지를 위한 법률을 제정할 권리가 있음을 선언했습니다. 이 행위는 영국 정부가 그들의 우려를 들을 의사가 없음을 시사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에 식민지 주민들을 더욱 화나게 했습니다.

1767년 타운센드법

1767년 영국 정부는 식민지로 수입되는 다양한 상품에 새로운 세금을 부과하는 타운센드법을 통과시켰습니다. 이러한 행위는 또한 인기가 없었고 식민지에서 더 많은 항의와 시위를 불러 일으켰습니다.

보스턴 대학살

1770년에는 영국군과 보스턴 식민지 주민 사이의 긴장이 폭력 사태로 비화되었습니다. 보스턴 대학살로 알려지게 된 사건에서 영국군은 식민지 주민들에게 총격을 가해 5명이 사망했습니다. 이 사건은 식민지와 영국 정부 사이의 긴장을 더욱 고조시켰고, 미국 독립 운동에 활력을 불어넣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1773년 차법

1773년 영국 정부는 영국 동인도회사에 식민지 내 차 판매 독점권을 부여하는 차법(Tea Act)을 통과시켰습니다. 이 행위는 영국 정부가 식민지의 동의 없이 세금을 부과하려는 추가 시도로 간주되었으며, 이는 그해 12월 보스턴 차 사건으로 이어졌습니다. 보스턴 차 사건은 식민지와 영국 정부 사이의 갈등의 중요한 전환점이었으며, 이는 미국 혁명의 발발로 직접 이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