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프 에릭슨은 특정 국가에 소속된 인물이 아니었다
레이프 에릭슨(Leif Erikson)이 특정 국가를 위해 일했다는 확실한 기록은 없습니다. 그는 외교관이나 군인처럼 국가에 고용되어 활동한 인물이 아니라, 바다를 누비던 탐험가(explorer)였기 때문입니다.
레이프 에릭슨은 누구인가?
레이프 에릭슨은 약 970년경 아이슬란드에서 태어난 노르드(바이킹) 탐험가로, 그린란드의 개척자였던 '적색 에리크(Erik the Red)'의 아들입니다. 그는 어린 시절 가족과 함께 그린란드로 이주하여 그곳에서 성장했습니다.
노르웨이와의 인연
다만 완전히 무소속이었던 것은 아닙니다. 기록에 따르면 레이프는 999년경 노르웨이로 항해하여 올라프 트리그바송(Olaf Tryggvason) 국왕의 궁정에 머물렀고, 그곳에서 기독교로 개종했습니다. 이후 국왕의 요청으로 그린란드에 기독교를 전파하기 위해 귀국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본질은 탐험가
이러한 연유로 노르웨이 궁정과 관계를 맺었지만, 그는 어디까지나 국가의 명령을 수행하는 관료가 아니라 자신의 의지와 모험심으로 항해를 이어간 탐험가였습니다.
콜럼버스보다 500년 앞선 신대륙 도달
레이프 에릭슨이 역사에 이름을 남긴 결정적인 이유는 단연코 항해 업적입니다. 서기 1000년경 그는 북아메리카 대륙에 도달한 최초의 유럽인으로 여겨지며, 이 땅을 '빈랜드(Vinland)'라고 불렀습니다. 현재 캐나다 뉴펀들랜드섬의 랑스오메도우즈(L'Anse aux Meadows) 유적이 그의 상륙지일 가능성이 높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결론
정리하자면, 레이프 에릭슨은 특정 국가에 소속되어 일한 외교관이나 군인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노르웨이 왕실과 인연을 맺기도 했지만, 본질적으로는 자유롭게 바다를 탐험하며 새로운 땅을 개척한 노르드 탐험가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