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데스 산맥에 자리한 페루는 남미에서 스페인 식민 지배를 벗어난 국가 중 가장 늦게 건국 200주년을 기념하는 나라다. 스페인 왕실로부터 독립한 다른 여덟 개 남미 국가들은 훨씬 전에 이미 200주년 행사를 치렀다. 볼리비아와 에콰도르는 2009년, 베네수엘라·아르헨티나·콜롬비아·칠레는 2010년, 파라과이와 우루과이는 2011년에 각각 기념행사를 열었다.
페루가 주변국보다 한참 뒤에 독립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남미 스페인 세력의 중심지였던 페루는 이 지역에서 독립 국가를 수립한 순서조차 마지막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페루는 왜 이웃 나라들보다 훨씬 늦게 200주년을 기념하고 있으며, 정작 스페인으로부터 마지막으로 독립을 쟁취한 남미 국가는 어디였을까?

'아메리카 첫 자유의 외침'
첫 번째 질문의 답은 의외로 단순하다. 페루가 기념하는 것은 호세 데 산마르틴 장군이 독립을 선포한 지 200주년이지만, 주변 많은 남미 국가들은 독립 당일이 아니라 훗날 자유 국가로 이어진 혁명의 시작점을 기준으로 200주년을 계산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볼리비아가 지역 최초로 2009년 5월 25일에 200주년 행사를 열 수 있었다. 물론 볼리비아의 실제 독립 200주년은 2025년 8월 6일이 된다.
당시 에보 모랄레스 대통령이 기념한 것은 소위 '추키사카 혁명'의 200주년이었다. 추키사카 혁명은 흔히 '아메리카 첫 자유의 외침'으로 불린다(라파스 또는 키토에서 독립 운동이 시작되었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이 혁명은 1809년 5월 25일, 현재의 수크레이자 당시 리오데라플라타 부왕령에 속했던 도시에서 일어난 민중 봉기였다. 크레올(식민지 출신 백인)들은 총독을 몰아내고 정부 평의회(Junta)를 구성했으나, 이는 1810년 진압당했다. 그럼에도 이 봉기는 이후 라틴아메리카 전역으로 번져간 유사한 독립 운동의 도화선이 되었다.
혁명의 불씨를 지핀 사건
이러한 혁명의 방아쇠가 된 것은 1808년 프랑스의 스페인 침공이었다. 카를로스 4세와 그의 아들 페르난도 7세는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에게 퇴위를 강요당했고, 나폴레옹은 자신의 동생 조제를 새 스페인 국왕으로 앉혔다. 그러나 아메리카 식민지의 크레올 엘리트들은 조제 1세의 즉위를 인정하지 않았고, 권력 공백기를 틈타 자체 정부를 세우기 시작했다.
이 초기 정부 평의회들은 처음에는 페르난도 7세에 대한 충성을 맹세했지만, 미국(1776년)과 아이티(1804년)의 독립, 그리고 프랑스 혁명(1789년)에 영감을 받아 결국 스페인 왕실과 결별했다. 이렇게 시작된 길고 복잡한 독립 물결은 지역을 여러 나라로 나누었고, 오늘날 우리가 아는 국가들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혁명과 독립, 무엇을 기념할까
볼리비아, 베네수엘라, 아르헨티나, 콜롬비아, 칠레, 우루과이 등이 2009년부터 2011년 사이에 기념한 것은 바로 이런 혁명, 즉 '자유의 외침'의 200주년이었다. 이후 이 나라들은 실제 주권 선언 200주년을 한층 소박하게 기념했다.
그런데 왜 이 나라들은 실제 해방된 날짜(많은 경우 공식적인 '독립기념일'로 여겨진다)를 직접 기념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아직 스페인 왕실에 충성하던 시절의 첫 정부 평의회 설치를 왜 독립 운동의 시작으로 간주하는 걸까?
'산마르틴: 해방자의 정치적 전기'(2019)의 저자인 아르헨티나 역사가 베아트리스 브라고니는 BBC Mundo에 이것이 우연한 결정이 아니라고 밝혔다. 그녀는 "특정 날짜나 기념일을 정하는 것은 국가가 자국만의 국가 서사와 국가 정체성을 만들고자 하는 이해관계에서 비롯된다"며 "엄밀히 말해 1809~1811년 당시에는 스페인에 대한 독립 의지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동시에 그녀는 "기념 행위란 모든 국가가 수행하는 재구성된 선택적 기억의 과정"이라고 강조했다.

그럼 진짜 마지막 독립국은?
그렇다면 남미에서 스페인 식민 지배에서 가장 늦게 벗어난 나라는 어디일까?
답은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주권 국가 선언이 가장 늦은 나라를 따진다면 우루과이다. 우루과이는 매년 8월 25일을 독립기념일로 기념하는데, 1825년 이날 대표자 회의가 독립 선언문에 서명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시 '동방주(東方州)'라 불리던 우루과이는 스페인에서 독립한 것이 아니었다. 이미 스페인으로부터는 해방된 상태였고, 침입한 포르투갈 왕실과 브라질 제국에 맞서 봉기해 리오데라플라타 부왕령을 계승한 독립 영토인 리오데라플라타 연합주에 합류하려 한 것이다.
우루과이가 주권을 완전히 확립한 것은 1828년, 브라질과 연합주(대부분 오늘날의 아르헨티나) 사이를 잉글랜드가 중재한 후였다. 2년 후 헌법 제정과 함께 우루과이는 영토 일부를 이루는 강의 이름을 딴 '동방 우루과이국'이라는 국명을 채택했다.
스페인에서 마지막으로 독립한 나라
그렇다면 스페인으로부터 마지막으로 독립한 나라는 어디였을까? 답은 페루였다. 리마는 남미 왕당파 세력의 중심지였기에 해방 혁명에 가장 강하게 저항했고, '자유의 외침'을 가장 늦게 내질렀다.
역사가 브라고니는 "페루 부왕 호세 페르난도 데 아바스칼은 자신이 '반역자', '아메리카 혁명가'라 부른 세력에 대한 강경한 소탕 정책을 통해 왕과 군주제의 이익을 수호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1814년 나폴레옹이 유럽에서 몰락하고 페르난도 7세가 스페인 왕위에 복귀하자, 스페인은 아메리카 분리독립 운동에 대한 전면전을 개시했고 페루 부왕령의 수도는 핵심 거점 역할을 했다. 그녀는 "동시에 리마의 상인과 엘리트들이 남미 전역의 전쟁에 자금을 댔다"고 덧붙였다.
이런 배경 속에서 안데스 대륙횡단 원정으로 명성을 얻고 1818년 칠레를 해방시킨 아르헨티나의 해방자 산마르틴은 군대와 함께 리마에 입성해 1821년 7월 28일 페루의 독립을 선언했다.
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페루가 스페인 왕실에서 해방된 마지막 남미 국가는 아니었다. 앞서 언급했듯 볼리비아는 페루보다 4년 뒤인 1825년에야 독립 국가를 선언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첫 자유의 외침'을 내질렀던 곳이 마지막까지 독립을 이루지 못한 셈이다.
당시 '알토페루'라 불리던 볼리비아 지역은 처음엔 페루 부왕령에, 이후엔 리오데라플라타 부왕령에 속한 자치 지역이었다. 그러나 1810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혁명이 일어나자 아바스칼 부왕은 이 지역을 임시로 자신의 관할 아래 재편입했다. 상(上)페루 전역을 스페인 통치에서 해방하고 새로운 조국을 세우기까지 15년의 세월과 긴 게릴라 전쟁이 필요했다.
스페인에서 독립한 마지막 남미 국가는 베네수엘라 출신 해방자 시몬 볼리바르를 기려 처음에 '볼리바르 공화국'으로 명명되었으나, 1825년 10월 현재의 이름인 '볼리비아 공화국'으로 개칭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