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와 18세기에 걸쳐 버지니아 식민지로 끌려온 아프리카인들은 단일한 배경을 지닌 집단이 아니었습니다. 대서양 노예 무역 기록에 따르면, 이들은 여러 해안 지역에서 서로 다른 비율로 유입되었으며, 각 지역은 고유한 언어와 문화적 전통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서부 중앙 아프리카와 세네감비아
버지니아로 향한 노예선의 승객 대다수는 서부 중앙 아프리카(오늘날 앙골라와 콩고 민주 공화국 일대) 및 세네감비아(오늘날 세네갈과 감비아 지역) 출신이었습니다. 특히 포르투갈계 상인들이 활발히 활동하던 앙골라 연안은 노예 무역의 최대 공급지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상부 기니(Upper Guinea)
대서양 횡단 항해를 생존하여 버지니아에 도착한 노예 가운데 약 17%는 상부 기니, 즉 오늘날 시에라리온과 라이베리아에 해당하는 지역 출신으로 추정됩니다.
골드코스트(Gold Coast)
1680년부터 1700년 사이에는 골드코스트, 즉 오늘날 가나 연안 지역 출신 노예가 버지니아에 도착한 노예 전체의 약 25%를 차지했습니다. 이 시기는 영국 왕립 아프리카 회사(Royal African Company)가 해당 지역 무역망을 적극적으로 운영하던 때와 겹칩니다.
출신 지역의 다양성이 남긴 의미
이처럼 버지니아의 노예 인구는 서부 중앙 아프리카, 세네감비아, 상부 기니, 골드코스트 등 광범위한 지역에서 모여들었습니다.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를 지닌 사람들이 한곳에 모이면서, 초기 아프리카계 미국인 공동체의 독특한 문화적 토대가 형성되었다는 점에서 이러한 출신 지역의 분포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